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 (322) - 구약성경과 선교이야기 (134)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그가 내게 부르기를(이크라에니) 주는 나의 아버지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아타 엘리) 나의 구원의 바위시라(웨쭈르 에슈아티) 하리로라”(89:26).

여름 장마철 우기를 맞아 전국은 찜통 불볕더위로 피서지를 찾아 이동하고 있다. 한국의 장마는 이제 열대 지방의 스콜 현상으로 바뀌어서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 따라서 변한 기상으로 농사꾼들에게는 새로운 농법을 개발하게 한다. 세상은 포스트 팬데믹 시대 이후의 새로운 변화에 대처하려고 부단히 대응하는 모습들이다. 지구 환경의 변화로 말미암아 생태환경 경영(ESG)에 적응하려는 작업들을 하면서 기업체와 나라는 새롭게 적응하려고 한다. 시편 89(에스라인 에단의 마스길)은 시편 3권의 결론으로서 오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지혜와 시편의 세계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보여준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와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며 인생의 문제에 해결자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

그를 위하여 나의 인자함을(하스디) 영원히 지키고 그와 맺은 나의 언약을(우베리티) 굳게 세우며(네에메네트) 또 그의 후손을 영구하게 하여 그의 왕위를(웨키스오) 하늘의 날과 같게 하리로다(키메 샤마임)”(89:28-29). “그의 후손이 장구하고(자르오 레올람) 그의 왕위는 해 같이 내 앞에 항상 있으며(카쉐메쉬 네게디) 또 궁창의 확실한 증인인 달 같이 (케야레아흐 이콘)영원히 견고하게 되리라 하셨도다(셀라)”(89:36-37). 이 시편 89편은 축제와 제의 시편으로서 다윗 왕의 계약 시편(78, 132)으로서 시내산 계약갱신 시편이나 왕조 시편, 시온 시편, 야웨의 제왕즉위 시편 등과 맥락을 같이 한다(앤더슨). 개인 탄식시(왕조)로서 제의적인 노래에서 예배의 상황에서 불려지며 야웨가 다윗과 맺은 것에 대한 찬양과 감사하는 시이다. 다윗왕과의 계약의 신실성을 다시 확인하며 시편 891-37절은 다윗과의 계약에서 나타난 야웨의 영원한 사랑에 대한 찬양이며(삼하7), 38-52절은 탄식시로서 전쟁에서 패배한 왕임을 보이며 계약신학의 측면에서 하나님이 다윗과 계약을 저버렸다고 불평하는 노래이다.

그러나 주께서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임 메쉬헤카) 노하사 물리치셔서 버리셨으며 주의 종의 언약을(베리트 아브데카) 미워하사 그의 관을 땅에 던져 욕되게 하셨으며(힐라레타 라아레츠 니즈로)”(89:38-39). 왕인 야웨가 세상의 왕인 다윗을 통하여 다스린다. 그래서 시인은 대적자들이 약자와 압제 받는 자들을 괴롭게 하는 것에서 해방하시고 이 핍박받는 것을 정의로 다스려 주길 탄식한다(72). 이는 다윗과의 언약으로 야웨와 다윗 왕 사이에 확립된 다윗 신학의 한 단편을 보여준다. 부자지간의 관계가 회복됨으로 문제가 해결 될 것을 보여준다. “주여 주의 성실하심으로(베에무나테카) 다윗에게 맹세하신 그 전의 인자하심이(하사데이카 하리쇼님) 어디 있나이까(아예)”(89:49). “내가 또 그를 장자로 삼고(아니 베코르 에트네후) 세상 왕들에게 지존자가 되게 하며(엘리온 레말케 아레츠)”(89:27). “내가 내 종 다윗을 찾아내어(마짜티 다위드 아브디) 나의 거룩한 기름을 그에게 부었도다(베쉐멘 콰드쉬 메샤흐티우)”(89:20). “네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아드 올람 아킨 자르에카) 네 왕위를 대대에(레도르 와도르) 세우리라 하셨나이다(셀라)”(89:4). 이 시편은 아삽 성가대 시편(73-83+50)과 성가대원들의 다른 시편(84-89)의 결론으로서 시편 2권과 3권을 구성을 통해 중심에 위치하며 다윗 언약의 노래를 통하여 하나님의 다스림과 영원히 존귀한 하나님의 다윗 언약을 환기시키며 비록 탄식의 상황에서도 변함없는 사랑(헤세드)으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여준다.

이러한 왕과 같은 제사장과 같이 열방에 가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한 귀한 선교사들이 있다.

서서평 선교사(쉐평, 엘리자벳 J. Shepping, 1880.9.26.-1934.6.26.)는 동역자로서 최흥종 목사를 오라버니(같은 해 1880년생으로 출생했지만 최 목사가 54일생으로 빠름)같이 존경하였다. 최 목사는 그의 사업에 협력하며 부동교 밑의 거지와 부랑아를 돌보는 일에 힘쓰며 3.1운동 때 최흥종 목사가 수감될 때에 영어성경과 영어책을 구입하여 감옥에 넣어주었다. 그래서 최 목사가 영어 공부를 하게 하여 나중 시베리아 선교를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또한 불우 여성 10여 명을 양녀로 삼아서 사랑으로 돌보았다.

박해라 전도사와 조아라 여사도 이일 학교 선생으로서 서서평 선교사를 동역하였다. 또한 보든 녹스(Marie Borden Knox)가 서서평의 긍휼한 마음과 사랑을 전했다. 그녀는 모기로 방충망을 치고 자야 하는 상황에서도 차별을 둘 수 없어서 모기장을 치지 않고 잘 정도로 사랑이 많았다.

오방 최흥종 목사(1880-1966)는 서선교사의 영향으로 러시아 선교에 열정을 갖게 되어서 최초의 러시아 선교 활동을 하였다. 그는 나병환자와 소외된 이웃들을 평생 섬기었다. 그래서 최 목사가 소천할 때 모든 관공서와 학교들이 휴교할 정도로 광주의 아버지로서 존경을 받았다. 최흥종 목사는 한센 환자를 거두어 치료한 미국 선교사 포사이트 선교사에게도 감동을 받았다. 그는 광주 나병원 설립에 기여하였고 소록도 재활 시설 확장에 도움을 주었다. 또한 농촌 지도자 양성을 위한 삼애학원(1948), 음성 나환자 갱생을 위한 호혜원(1956), 폐결핵 환자 요양을 위한 송등원(1958)등을 설립하는 등 낮은 자들과 함께 하는 예수 정신을 실천하였다.

오방 최흥종 목사와 서서평 선교사
오방 최흥종 목사와 서서평 선교사

최흥종 목사는 3.1운동으로 인해 14개월 옥고를 치렀고 1927년 신간회 광주 지회장을 맡아 독립 운동을 하며 1935년 신사 참배 결의에 반대하여 무등산에 은거하여 민족운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는 1920년 광주 YMCA 창설에 중심적 역할을 하며 디아스포라 재러 한인들을 두 차례 방문하여 시베리아 선교 활동을 하였다. 또 그는 1945년 조선 건국준비위원회 전남 지회장에 추대되기도 하였다. 한 명의 선교사의 위력은 한 나라의 독립운동의 횃불이 되기도 하였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는 이 선교 이야기는 새로운 의미로 다가와서 우리도 갈릴리 땅 끝을 향하여 빛을 전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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