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 (333) - 구약성경과 선교이야기 (145)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KC대 전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KC대 전 총장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레쉬트 호크마 이르아트 아도나이)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이니(세켈 토브 레콜 오세헴) 여호와를 찬양함이 영원히 계속되리로다(테힐라토 오메데트 라아드)”(111:10).

 

종말론적 현상이 세계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제는 이상 기온으로 말미암아 기상 이상 현상의 용어가 새롭게 나타나고 있다. 세계가 알 수 없는 현실이 무수히 펼쳐지고 있는 이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살 수 있는 때가 되었다. “그의 손이 하는 일은(마아세이 야다이오) 진실과 정의로 행하신 바로다(에메트 우미쉬파트)”(111:7). 종말의 때에는 자신이 메시아라 하고 또 구세주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거짓 신이 동시에 많아진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세계 전쟁의 판도가 어떻게 될 지를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재래식 무기가 무력하게 드론의 작은 민간인 기구에 의해 당하는 모습을 통해서 앞으로 전쟁의 모습이 이와 같이 변할 것을 보여준다. 결국 인생과 나라의 운명이 하나님의 손에 의해 이끌어 감을 보여준다.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들이 크시오니(게도림 마아세 아도나이) 이를 즐거워하는 자들이 다 기리는도다(데루쉼 레콜 헤페쩨헴)”(111:2). 하나님의 일이 하나님의 사람들, 주의 종들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현실을 보게 된다. “그의 행하시는 일이 존귀하고 엄위하며(호드 웨하다르 포올로) 그의 의가 영원히 서 있도다(웨찌드콰토 오메데트 라아드)”(111:3). 시편 111편은 시편 5권의 세계가 찬양의 시 세계이며 시편의 결론부에 해당함을 말한다. 시편 5권은 위대하신 하나님-왕이라는 사실을 시편107-150편을 통해 말하고 있으며 토라 시편(알파벳 시편들, 지혜시편)을 중심으로 척추(백본)시편의 근간을 이루면서 시편의 세계를 구성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양식을 주시며(테레프 나탄 리레아이오) 그의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시리로다(이즈코르 레오람 베리토)”(111:5). 이 지혜의 틀은 시편 5권 안에서 <시편 107:43-145:19-20>틀로 구성하며 할렐루야 시편 146-150편과 찬양시편(할렐루야로 시작하는 111-113, 키아스무스(교차적 구성), 끝에 할렐루야로 끝나는 115-116)을 아우른다.

시편의 세계가 얼마나 웅장하고 세밀한지 보여준다. 시편은 이처럼 창조 세계를 보이는 것처럼 구약의 오경과 예언서, 성문서의 거대한 타낙(구약성서)의 구조를 축소한 모습을 보인다. 시편 111-118편은 인간을 의지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주제를 강조하고 있다. 시편 111-112편은 할렐루야 찬양은 바로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의 언약을 기억하고 지키는 자의 것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속량하시며(페두트 샤라흐 레아모) 그의 언약을 영원히 세우셨으니(찌와 레오람 베리토) 그의 이름이 거룩하고 지존하시도다(콰도쉬 웨노라 쉐모)”(111:9).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은 언약 공동체에게 행하시는 것임을 말한다. “그의 기적을 사람이 기억하게 하셨으니(제케르 아사 레니플레오타이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도다(하눈 웨라훔 아도나이)”(111:4). 결국 찬양은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회중에게서 이루어지는 거룩하고 경건한 행위이자 노래임을 알려준다. “할렐루야, 내가 정직한 자들의 모임과 회중 가운데에서(할렐루야 오데 아도나이 베콜 레바브 베소드)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예샤림 웨에다)”(111:1). 또한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과 나라를 중심으로 역사를 움직여 감을 보여준다. “그가 그들에게 뭇 나라의 기업을 주사 그가 행하시는 일의 능력을 그들에게 알리셨도다(코아흐 마아사이오 히기드 레아모 라테트 라헴 나하라트 고임)”(111:6). 마침내 우리가 주목해야 일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토라)이며 그가 좋아하신 덕목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의 손이 하는 일은 진실과 정의이며(에메트 우미쉬파트) 그의 법도는 다 확실하니 영원무궁토록 정하신 바요 진실과 정의로(베에메트 웨아샤르) 행하신 바로다”(111:7-8).

시편의 세계가 찬양으로 매듭지어지는 것처럼 우리 인생의 결론이 감사와 찬양의 세계로 끝날 수 있음을 선교사를 통해서 잘 보여준다. 말콤 펜윅(1863-1935) 선교사는 재정 자립형 선교사의 모델이 되었다. 펜윅 선교사의 선교는 구걸하듯이 구차한 모습을 지닌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대사로서 존귀하고 우아하게 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그는 1889926세의 나이로 한국에 와서 45년간 사역하다가 원산에 묻혔다. 그는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 태어나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정규대학을 졸업하지 못하고 농사와 원예 농장에서 일하며 공부를 하였다. 그는 토론토에 이주해서는 철물상 관리인으로 근무하였고 대학 생활 중에 학생자원 운동의 부흥회에 참석하여 선교사로 부름을 받았다. “비록 녹슬고 찌그러진 통이라 할지라도 생명을 구하는 물을 나를 수 있습니다.” 중국 선교사 로버트 월더의 이 간증이 그를 선교사로 나서게 하도록 도전을 주었다.

펜윅 선교사는 한국에서 선교 중에 해론 부인이 복음을 전하였다는 이유로 구속당했다는 신문 보도를 보고 한국행을 결심하게 된다. 그는 평신도 선교사로서 몇 사람의 후원을 약속받고 한국에 도착하여 서울에서 서경조 목사(소래 교회 초대 목사)를 만나 어학 공부 선생을 맞이하였다. 그리고 그는 소래에 가서 1년간 한국 언어와 문화를 익혔다. 1891년 원산으로 가서 전도활동을 시작했다. 선교 초기에는 선교지 사람들의 배신과 재정 문제로 말미암아 선교의 문제가 많았다. 원산 사역 2년 후에 캐나다로 돌아가서 보스턴 선교 훈련학교(고든 목사 운영)에 입학하여 3년간 신학과정을 마친 후에 목사안수를 받고 1896년 원산으로 복귀한다. 그는 원산에서 <한국 순회 선교회>를 조직하고 한국인 전도자를 양성한다. 그 후에 후원에 힘입어 자력으로 선교 재정을 충당하기에 종자돈으로 과수원 2천 평을 조성하고 채소와 과일을 재배하며 서구의 농작법을 도입 적용하여 한국 농사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펜윅 선교사와 그가 파견한 신명균 전도자가 말을 타고 전도하는 장면
펜윅 선교사와 그가 파견한 신명균 전도자가 말을 타고 전도하는 장면

펜윅 선교사는 1901년 공주와 강경 등 충청도 지역으로 확장하며 <엘라 씽 기념 선교회(보스턴 고든 목사 후원>가 재정 문제로 철수하는 것을 대신하여 그는 그대로 양도받고 충청도 복음화의 베이스 캠프로 삼고 선교를 시작한다. 그는 신명균 전도자를 공주 성경학원장으로 파견하였다. 선교사는 1903년 성경학원을 개교하며 체계적으로 성경을 가르치고 노동을 겸하며 하도록 지도하며 전도자를 양성하였다. 그는 성경학원 졸업자를 만주와 시베리아로 파송하며 한민족 공동체를 확대한다. 1906년 함태영 외 4인을 파견하고 많은 선교사를 북방 지역에 파견하며 이 전도자들이 일본군의 독립군으로 여겨져서 많이 순교당하기도 한다. 일제는 <대한>이라는 이름을 사용 금지를 하여 <동아 기독교회>로 명칭을 변경하여 성경 번역, 찬송가 보급을 한다. 이 이름은 침례교회의 모태가 되어 1914년 이종적 목사가 2대 감독으로 임명되어 사역자를 양성하게 된다. 펜윅은 한국 선교(침례교)의 아버지로서 북방 선교(몽골지역 포함)의 지경을 확대하고 하나님의 사역의 다양성을 가지고 선교를 한다. 그는 우주적 선교 비전을 가지고 선교하는 선교사의 전형이 되었다. 펜윅은 초대 교회의 사도행전적 선교의 발판을 가지고 선교를 우주적 비전을 가지고 하였다. 그는 선교의 전형을 보여준 개성이 강하고 독특한 성격의 선교사임을 보여주었다. 선교는 이처럼 하나님이 영이 임한 사람이 타지에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는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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