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 (337) - 구약성경과 선교이야기 (149)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솔로몬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쉬르 하마아로트 리쉐로모)>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임 아도나이 로 이브네 바이트)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샤웨 아메루 보나이오 보)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보나이오 보 임 아도나이 로 이쉬마르 이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샤웨 샤콰드 쇼메르)”(127:1).

 

세계가 화약고가 된 것처럼 불전쟁의 소문은 늘어간다. 불안하고 초조한 전쟁의 나날은 한반도의 대치 상황에서 혹 남북한 전쟁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다. 남북의 전력의 차이가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고 하여도 현대무기의 파괴력은 많은 살상을 예고하고 있기에 안심할 수 없다. 전쟁의 비극은 그 파급이 심각하고 또 전쟁 피해로 인한 인간성을 크게 파괴하기에 그 어려움은 실로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로 말미암아 사람과 가정은 물론, 공동체와 국가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시편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고 또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지혜를 얻고 평화를 간구하게 된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샤웨 라켐 마쉬키메 쿰 메아하레 쉐베트 오케레 레헴 하아짜빔)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켄 이텐 리디도 쉐나)”(127:2).

시편 127편은 지혜 토라 시편으로서 시편 1, 34, 37, 49, 78, 105, 106, 111, 112, 127편 등이 해당한다(모빙켈). 퍼두는 지혜시가 시편 1, 19, 32, 34, 37, 49, 73, 112, 119편 등이라고 한다. 대개 이 시들은 알파벳(아크로스틱) 시로서 욥기와 전도서의 지혜가 담겨져 있다. 솔로몬의 표제로 된 시는 시편 72(포로기전 왕정 시대)127편으로서 포로기 후에 성전을 언급하며 솔로몬이 성전 건립을 하여서 그 이름의 별명으로 여디디야’(주의 사랑을 입은자, 삼하12:25)라는 이름을 얻는다. “보라 자신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히네 나하라트 아도나이)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바님 사카르 페리 하바텐)”(127:3). 성전 건축과 성전 봉헌을 말하고, 가정과 개인의 성전을 암시하며, 일상적인 삶을 언급하고 있다. 이는 우리들의 하루의 삶의 성전도 이야기하는 것이며 이로써 축복의 삶을 포괄적으로 말하면서 시인은 지혜의 격언을 말하고 있다.

시편 127편 후반부는 가정의 성전, 가정의 행복과 자녀의 축복을 이야기하며 결론을 맺는다. 성전 예배와 제사가 가정의 성전 세움과 연결되어 나타나고 축복의 삶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기초돌이자 초석(礎石)이 됨을 말한다.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127:3). 이 시편은 시편 1, 2편의 주해처럼 읽혀지며 축복받은 인생이 어떠한지 보여준다. 이 시편은 성전의 중요성을 강조한 시편으로서 성전으로 올라가는 노래, 성전 시편의 지혜를 보여준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에 화살같으니(케히찜 베아드 깁보르 켄 베네 한네우림)”(127:4). ‘주의 사랑하는 자’(여디디야)에게 잠을 주신다는 말씀(2)과 자식의 복이 바로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아쉐레 하게베르 아쉐르 밀레 에트 아쉐파토)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 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메헴 로 에보슈 키 에다베루 에트 오에빔)”(127:5). 고대 농경사회와 이스라엘의 성문 법정에서 벌어지는 장면으로서 이웃 생활의 윤리와 도덕이 잘 배어 나온다. 발걸음의 노래(올라가는 노래,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는 이 성전 시편인 120-134 편이다. 이 중에 베레카() 제사장 축복 노래(6:24-26)는 은혜와 평강, 보존(지키심)과 축복을 담고 있다. 이 축복은 시편 120, 121, 122, 123, 125, 127:1, 128, 129, 130 132, 133, 134편 등에 담겨있다. 이스라엘의 축복은 성전(교회, 가정예배 제단)에 있음을 천명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예배 중심의 삶이 축복의 삶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려준 초기 선구자, 선교사님을 대하게 된다.

 

캐나다 최초의 선교사, 윌리암 존 맥켄지(W. J. Mackenzie, 1861-1895)는 방송작가 한운사가 지은 노래,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가사처럼 소래 마을에서 누가 이 맥켄지를 모르시나요?’ 오늘 다시 물어보게 된다. 그는 120년 조선 땅 황해도 소래 마을에 와서 영양실조로 소천한 그 선교사에 고향을 찾는 발길이 또 물어졌다. 토론토의 유영식 교수(토론토대 요크대)는 엘리자베스 맥컬리가 쓴 한 알의 밀알을 우리말로 번역하고 그의 고향에 여러 번 다녀오면서 그의 생가를 찾지만 쉽지 않았다. 유교수는 캔소 해협을 건너 케이프브레톤 섬에서 마블 마운틴으로 가는 시골길을 달리다가 맥켄지 포인트 로드라는 팻말을 찾고 맥켄지 선교사의 종손 남매를 만나게 된다. 거기서 종손녀 비벌리를 만나게 되고 그의 친 누나 아이반을 만나게 되면서 맥켄지의 스토리를 듣게 되었다. 엘리자베스 맥컬리가 쓴 한알의 밀알(A Corn of Wheat)’을 소장하였는데 이는 그의 어머니가 결혼 선물을 주었다는 책으로서 아주 소중하게 보존했다. ‘책장은 색이 바랬고 곧 부서질 것 같아 갓난아기 안아주듯 조심해야 했다.’

맥켄지 선교사의 그의 일대기를 다룬 "한 알의 밀알" A Corn of Wheat: Or the Life of Rev. W. J. McKenzie of Korea (Classic Reprint) by. Elizabeth A. McCully
맥켄지 선교사의 그의 일대기를 다룬 "한 알의 밀알" A Corn of Wheat: Or the Life of Rev. W. J. McKenzie of Korea (Classic Reprint) by. Elizabeth A. McCully

맥켄지는 청청한 소나무 같이 끈질긴 인내심의 소유자와 같았다. 그는 브라도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솔밭 언덕에서 태어났다. 헬리팩스 파인힐 신학교에서 공부했고 우리에게로 와 주시오라는 마케도냐의 바울 환상처럼 맥켄지는 일본이나 중국이 아닌 미지의 땅 조선으로 가라는 음성을 듣고 황해도 장연군 소래 마을로 갔다. 그는 거기에서 오직 예수를 따라 충성되게 한 알의 밀알이 된 사람이다. 한복을 입고 초가집에서 살며, 의료선교사 언더우드 박사 부인이 준 성탄선물로 보내준 서양음식은 손도 안대고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 때에 그는 영양실조와 풍토병에 시달리다가 삶을 마쳤다. 이는 소래에 온지 2년 미만이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며 고통 중에도 서울에 있는 에비슨 박사에게 왕진을 요청하는 편지와 어머니와 친지 및 기포드 목사에게 그동안의 활동 상황 보고한 것이나 선교 지원을 요청한 처절한 편지가 유서로 남아 있다. 그는 자원한 선교사라는 이유 때문에 모교인 파인힐 신학교에는 한국 선교 파송 100주년 동판에도 그의 이름이 없었다. 자비량 선교사로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선교의 믿음으로 한국 땅에 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캐나다 선교사가 200여명의 왔지만 최초의 밀알 선교사는 의학을 공부하고 이처럼 한국에 오게 된다. 그의 약혼녀 맥컬리도 원산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었다. 오늘 우리는 한 선교사의 이야기를 다시 들으면서 선교 정신을 고취하게 되며 다시 땅 끝에서 선교하시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이야기를 다시 회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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