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 (335) - 구약성경과 선교이야기 (147)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여호와의 이름으로(베셈 아도나이)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바루크 하바)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베라케누켐 미베트 아도나이)...여호와께 감사하라(호두 라아도나이) 그는 선하시며(키 토브)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레올람 하세도)”(118:26, 29).

 

세상은 점점 통제와 감시가 편한 전자 세상으로 바뀌면서 인간의 자유가 억제되고 감시 사회의 체제로 전환되는 세계가 되었다. 인간은 그로 말미암아 이제 종말론적 현상을 보면서 좀 더 인간이 자유로운 세상이 될 수 있을지 대해 그 생각을 모으고 자율적 공동체가 될 수 있는 틀을 만들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전하며 하나님의 지혜를 통해 하나님의 통치가 이뤄지는 세계, 곧 헤세드(인자)세계를 가르쳐 준다. “이제 아론의 집은 말하기를(요메루 나 베이트 아하론)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키 레올람 하세도) 이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요메루 나 이르에 아도나이)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118:3-4).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곧 성전으로 가는 발걸음의 공동체는 하나님의 사랑(헤세드)이 영원하다고 고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편 118(23; 26; 27; 63; 96; 122; 24; 68; 118; 132)편은 예루살렘 성전 제의, 성전 예배를 드리는 공동체 시편이라고 말한다(모빙켈). 시편 18편과 118편은 개인 감사시편으로써 원수로부터 구원받은 것에 대하여 감사하며 포로기 이후 공동체의 상황을 보여준다. 곧 이는 아론의 집제사장과 아론의 자손, 레위 지파의 사람들의 노래임을 가리킨다. 이 감사 시편은 왕정 시편의 특징을 가진 감사 시편의 형태와 배경을 가진다(3-4; 9/10; 17; 22-23;27-28; 35; 40-41; 55-57; 59-63; 66; 69-71; 92; 94; 116; 118; 138-143). 시편 107편은 질곡과 고뇌의 일종의 형태에서 구원받는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다.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에벤 마아수 하보님 하에타 레 레로쉬 핀나흐)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메에트 아도나이 하예타)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조트 히 니펠라트 베에네누)”(118:22-23). 메시아 예수는 바로 이 구속주로서 왕으로서 우주를 다스리는 분임을 밝히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의 자녀들이 성전에서 부르는 감사의 노래는 메시아의 승리와 메시아 날의 환희를 보여준다. “이 날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것이라(제 하욤 아사 아도나이)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나기라 웨니쉬메하 보)”(118:24). 시인은 성전에 들어가면서 메시아 왕이 되셔서 우리를 다스려주심으로 감사하게 됨을 노래하고 있다. “내게 의의 문들을 열지어다(피트 리 샤아레 체데크) 내가 그리로 들어가서(아보 밤)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오데 야흐) 이는 여호와의 문이라(제 하샤아르 라아도나이) 의인들이 그리로 들어가리로다(짜디킴 야보우 보)”(118: 19-20). 이는 하나님의 구원이 감사의 조건이 되고 축복이 됨을 찬양한다.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오데카 키 아니타니) 나의 구원이 되셨으니(와테히 리 리슈아)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베라케누켐 미베이트 아도나이)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라 그가 우리에게 빛을 비추쳤으니(엘 아도나이 와야에르 라누) 밧줄로 절기 제물을 제단 뿔에 맬지어다(이세루 하그 바아보팀 아드 콰르노트 하미즈베아흐)”(118:21, 26b-27). 의식적 왕정 제의 시편(2; 18; 89; 101; 110; 118, 가을 축제)에서 겸손과 겸비의 의식을 통해 왕정 드라마 시편으로서 모습을 보여주며 다윗의 고난과 실패와 좌절을 보여준다. 또 대적자로부터 구원을 받음으로써 그 왕 메시아의 정당성의 모습을 보인다. “여호와께 감사하라(호두 라아도나이)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118:1).

이러한 감사의 노래를 자주 부르며 인생을 성공한 분들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 교회, 솔내 교회를 세우도록 영적 감화를 준 멕켄지(Mckenzie, 1861-1895) 선교사가 그런 분이시다. 그는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송천동에 최초의 교회를 지어서 솔내교회로 불렀고, 또 소래 교회로 불리게 되었다. 이 교회는 한국에 최초로 세워진 교회로서 평신도가 세운 교회가 되었다. 1885(1886)년 서경조의 전도로 세워진 교회는 멕켄지의 지도로 자립하여 건물을 지었고 189573일 헌당식을 거행했다.

멕켄지 선교사는 캐나다 출신으로 노바 스코시아에 있는 대학과 신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는 신학교 재학시절 라브라도르에 가서 선교사로 일하던 중 조선에 대한 책을 읽고 감명 받아서 한국에 가기를 원했고 조선 선교사로서 지원하였지만 처음에는 거절당한다. 그는 좌절하지 않고 선교부로 가서 18942월 개인 자격으로 조선에 입국하게 된다.

멕켄지는 정복선교의 유형을 따르지 않고 문화인류학적 접근, 적응주의 선교원칙은 원주민 선교에 있어서, 피선교지의 사람들에게 접근하여 그들 자신의 힘으로 자립하여 교회를 세우게 하는 선교 방식을 채택한다. 솔내 사람들의 복음 수용으로 인해 솔내교회를 세우도록 한 것이다.

멕켄지 선교사와 1895년 당시 소래교회
멕켄지 선교사와 1895년 당시 소래교회

그는 예수님의 천상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내려온 것처럼 솔내 사람들과 같이 식사를 하고 같은 집와 의복을 입고 경외감이나 거리감을 제하고 철저히 피선교지 사람들과 일체가 되는 토착화 방식을 택하여 선교를 하였다. 풍토병으로 말미암아 한국 문화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고집스런 방식을 택하다 비참한 운명을 당한다. 그는 애석하게도 여러 가지 풍토병과 교회를 신축하지만 교회 건축을 하는 중 1년을 지나며 일상병과 신열로 말미암아 정신 이상을 일으켜 18957월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었다. 이런 비극적 운명에 따른 후속조처로서 한국 선교부는 새로운 선교사를 요청하였다. 솔내교회는 이 선교사에 대한 감명으로 또 다른 선교사를 요청하는데 함께 하였지만 선교부는 함경남북도를 새로운 선교지로 정하게 된다.

멕켄지 선교사가 머물던 소래의 초가집. 이 집은 얼마 후 소래교회로 세워진다.
멕켄지 선교사가 머물던 소래의 초가집. 이 집은 얼마 후 소래교회로 세워진다.

멕켄지는 사명감을 가지고 헬라팩스에 가서 수개월 의학 공부를 하며 선교를 준비하였고, 그의 가슴에는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삼고 한국인들과 같이 살다가 마지막 나팔 소리를 들을 때까지 그들과 같이 일하리라하고 결의한다. 그의 마지막 일기, 623일 토요일, 일기에 보면 최후 숨을 거두기 전 상태를 볼 수 있다. “...잠을 잘 수 없고 밖으로 나갈 수도 없다. 너무 약해졌기 때문이다. 오늘 오후에는 전신이 추워지는 것을 느꼈다. 옷과 더운 물주머니가 있어야겠다. 땀을 내야겠다. 조금은 나은 듯하기도 하다. 죽음이 아니기를 바란다. 내가 한국인들과 같은 방식으로 살았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말하게 될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이다. 내가 조심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낮에는 뜨거운 햇볕 아래서 전도하고 밤이면 공기가 추워질 때까지 앉아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내 마음은 평안하며 예수님은 나의 유일한 소망이시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이루신다. 몸이 심히 고통스러워 글을 쓰기가 너무 힘이 든다.” 그 후에 멕켄지의 약혼녀 맥컬리 양이 세운 묘비명에는 다음같이 나온다. “중략, 주의 말씀에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열매가 많다 함이 옳도다. 조선의 처음 열매요 목사의 몸은 여기에 자도다이처럼 한국 선교는 한 고귀한 영혼, 선교사들의 밀알 위에 오늘의 교회가 된 것이다. 이 같은 아름다운 발걸음들은 이렇게 조선 땅으로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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