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사 40:31)
1988년 망향기도원에서 요양하다가, 위로 차 왔던 친구 조예연 목사의 성화로 인근 갈릴리기도원으로 둥지를 틀었다. 조금 더 환경적으로 나은 곳을 택하여 옮긴 것이다. 기거하던 방이 상대적으로 햇빛이 잘 들어오고 공기가 맑은 곳이다.
그간 몸이 많이 좋아져 89년 8월부터는 서울신학대학교에서 잠시 교수로 재직했으나 마음은 늘 목회현장이었다. 서울의 한복판 작은 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으나 더 이상 설교할 수가 없었다. 마음이 아프고 가슴이 쓰려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기도 없이 목회에 응한 것이 불찰이었다. 다시 몸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한 후배 목사의 주선으로 대전의 외곽 천개동 마을에서 요양을 다시 시작했다. 무력했지만 아주 움직일 수 없는 것은 아니고 동네 주변을 조금씩 나다니며 들꽃이 너무나 예뻐 촬영을 하기 시작했다. 매크로렌즈로 주로 들꽃을 찍었다.
후배요, 제자들, 대여섯 명의 목사들이 몰려들었다. 이강천 교수는 이들에게 최근에 강하게 느끼는 선교사명과 비전에 대하여 열변을 토해냈다. 즉석 설교를 두 시간 이상을 했던 모양이다.
“야, 오늘 어떤 부흥회보다도 뜨거운 말씀과 은혜였지 않냐?”
“그래 맞아 우리 이 뜨거운 마음을 오래 간직하며 한국교회에서 선교운동을 일으켜보자”
“우리가 이렇게 뜨겁게 감동을 받았어도 이제 흩어지면 다 식어버릴지 몰라. 우리 오늘 아예 모임을 만들어 선교운동을 일으키고 실천해보면 어떻겠냐?”
처음엔 위로 방문이었지만 이럴 것이 아니라 후배 제자들을 위하여 성경공부라도 시켜주면 어떠냐는 이야기였다. 남정은, 이강석, 유환용, 김성남, 박재규, 유정호, 안석철 등이 함께 했다. 이름하여 “두루선교격려회”가 생겨난 것이다. 한 달에 한 번씩 회원들의 교회에 모여 선교를 격려하고 기도하는 모임으로 진행되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회원 수도 늘고 비전은 확장되었다.
이들이 바나바선교회의 초기 산파역할을 했다. 이들을 중심으로 제1, 제2기가 시작되었고, 또 이들을 중심으로 이사회가 조직되어 건물과 땅을 사고 이전을 반복하여 옥천 금계초등학교 부지에 까지 이르렀다. 초기에는 성령의 음성과 성령의 능력을 많이 의지하였다. 그것이 곧 힘이 되었다.
시간이 많던 이강천 목사는 그 시기에 성경을 유독 많이 읽었다. 누가복음을 읽던 중 4:14 말씀이 큰 글자로 튀어나오는 체험을 했다. “예수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의미 없던 그 말씀이 살아 움직인다. 열심히 뛰고 일했지만 열매는 없고 몸만 망가져 요양 중인데 무엇이 문제일까? 예수님도 성령의 권능을 받아 성령사역을 했는데 그걸 간과한 게 아닌가 하는 깨달음이었다.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라는 글을 크게 써놓고 방벽에 붙였다.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
문병 차 왔던 친구의 성화로 옮겨간 곳이 바로 ‘갈릴리 기도원’이었다. ‘갈릴리’라니 두어 달 동안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보내 달라고 기도했더니 지금 갈릴리로 온 게 아닌가? 첫 날 밤 이강천은 무릎을 꿇었다. 갈릴리로 오긴 왔는데 성령의 권능은 어찌되는 것일까?
주님이 은혜 중에 물으신다.
“네가 낫기를 원하느나?” - ‘물론이죠.’
“그러면 네가 믿느냐?” - ‘무엇을요.’
“내가 너를 치료할 것을 믿느냐?” - ‘제가 언제 부정하던가요?’
“네가 지금 믿느냐” - (얼른 대답이 안 나온다. 목회 중에도 많은 병자를 기도해주면서도 나았느냐는 말을 한 번도 해본 일이 없었다)
이강천 목사는 교리로는 믿으면서도 현재적 사건으로는 믿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자신의 불신앙을 고백하며 그날 많이많이도 회개했다.
그 다음 날, 원목전도사의 아들이 열병으로 고생했다며 기도해달라는데 기도했더니 감쪽같이 나았다.
다음 날에는 전도사의 딸아이가 열이 나서 데리고 왔는데 같이 왔던 세 아이까지 모두 기도 받고 고침을 받았다.
기도원에 내원한 치질환자, 신장염 환자 등이 계속해서 고침을 받았다. 아하~ 성령의 능력으로만이 이렇게 변화가 따라오는 것임을 깨달았다.
청소년 시절로 돌아가 보자. 하루는 담임목사님이 이강천을 서재로 부르더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 선생’은 목사가 되면 훌륭한 목사가 될 텐데...라는 감동이 있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인 학력에 어찌 신학대학을 들어간단 말인가? 고민하시던 목사님은 어떤 섭리가 있을 터이니 함께 기도해보자고 하신다.
그 후 이강천은 열심히 공부하여 고등학교 입학자격 검정고시를 한 번에 패스했다. 문제는 대입검정고시였다. 더욱이 수학 영어와 음악이 가장 문제였다. 방정식을 공부하는데 아무리 공부해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공부 좀 한다하는 친구, 선배, 후배 등 알 만한 사람들을 찾아가 붙잡고 물었으나 모두 아는 사람이 없었다. 방정식의 원리가 터득되질 않는다. 원두막을 지키며 방정식과 씨름하던 그는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하나님 해 넘어갑니다.”
순간 어떤 생각이 스쳐간다. 방정식이 풀리고 정답이 나온다. 사실 방정식도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셨다는 것이다. 그의 열정과 집념은 대단하다. 뽕잎을 따면서도, 누에꼬치를 치면서도 소를 치고 토끼와 닭을 기르면서도 단어장을 들고 씨름하며 공부했다. 비록 대입검정고시는 두 번째 만에 합격했으나 교육청에 가서 물어본 결과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게 되었다.
하나님을 붙들고 매달려 얻은 결과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가난하여 학원에 갈 돈도, 가난하여 전세방 얻을 돈도 없어 쪼들리며 살아왔지만 한 번도 목표를 이루지 못한 적이 없다. 그 때 그 때 목표와 방향을 정하고 하나님께 떼를 쓰면 시기가 문제이지 해결되는 것은 당연했다.
특히나 바나바훈련원을 설립하고 이끌면서도 초기 이사진이 구성됐을 때도 큰 교회 재정 많은 사람들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성령의 능력과 은사로만 살아왔다는 말이 맞다. 이러한 결과인가. 결실이 되어 나왔다.
2008년 3월엔 『성령사역으로의 초대』/푸른초장(부천)
2020년 10월엔 『성령영성: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쿰란(서울)
라는 책이 저술돼 출간됐다. 할렐루야!(연재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