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대담 : 본헤럴드 대기자 임승훈
인터뷰이 : 오사카 갤러리 강영선관장
일자: 2022년 7월 18일(am 11:00-12:00)
장소: 특별 전화인터뷰
Q1. 강영선관장님 안녕하세요? 본헤럴드 독자들에게 자신을 소개해주시죠.
A. 저의 이름은 강영선이구요, 1961년생(소띠, 본관 진주)으로 서울에서 나고 자라 건국대 경영학과를 졸업했습니다.
Q2.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면 지금 하는 일과는 분야가 다른데요, 어떻게 해서 일본에 갔으며 갤러리를 하게 되고 또 지금까지 일해오고 있는가?
A. 저는 주변 지인 중에 예술인들이 많아 예전부터 예술전시기획 분야의 일을 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002년 한일월드컵이 열리던 해 일본여행을 했는데요, 일본에서 대학원에 다니는 친구에게 놀러갔다가 여러가지 생각의 전환을 하게 됩니다. 내가 알고 있는 일본은 겉핥기뿐이요, 내가 보아온 일본은 정말 일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요. 일본인들은 한국인과 얼굴색과 생김새는 같으니 문화적으로도 같은 것 아닌가 예상했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더군요. 일본의 문화가 우리와 매우 다른 것을 본 것이죠. 친구의 권유도 있고 내 자신이 해보고 싶은 일이기도 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3. 오사카에 전시공간을 소개해주시고 이번에 8월에 여는 전시의 특징은 무엇인가?
A. 오사카 갤러리는 100여 평으로 그 지역사회에서는 큰 편에 속한다고 보시면 되겠고요, 이번 전시는 오사카갤러리 설립6주년 기념(3.1일)이며 코로나로 인해 연기되어왔던 아쉬움을, 금번 8월15일을 기해 광복77주년을 기념한다는 또 하나의 방향을 설정하고 일본에서 대규모로 한국, 일본, 중국, 미국, 영국, 이탈리아 카자흐스탄 7개국 작가들의 국제교류전시회라 하겠습니다. 전쟁과 평화를 소재(素材)로 한 이번 전시는 200명 여명이 참여해 400여점이 전시되겠습니다. 전시일정은 8월15일부터 9월15일까지 한 달간의 기획일정입니다.
Q4. 갤러리 설립 제6주년이면서 동시에 8.15해방 77주년 기념전시라고 할 수 있겠군요?
A.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종전기획전이며 한국으로서는 해방이라는 뜻 깊은 역사적인 날이기도 하구요. 그림전시는 8월15일부터인데 일본인들은 15일을 패망의 날로 기억함으로써 매우 슬픈 날이라 여기거든요, 그래서 지역의 지인과 인사되는 일본인들을 배려한다는 의미에서 개막식은 17일로 잡았습니다.
Q5. 한국인들은 8.15하면 광복이요 해방의 날로만 생각하는데, 일본인은 패망의 날일뿐 아니라 원폭피해 당사자라는 생각에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과 전범국가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A. 일본인들은 1945년 8월15일을 미국에게 패망한 날일뿐 아니라 원자폭탄으로 인한 피해국가라는 의식이 매우 크죠. 일종의 역사적(歷史的) 의미의 치환(置換)이라고나 할까요? 동아시아와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고 만행을 저지른 것이 대동아전쟁이요, 2차 세계대전 아닙니까? 전쟁 중에 수많은 아시아의 여러 나라의 청년들을 사지로 내몰았고, 부역자로 끌어가 죽음에 이르게 했으며, 조선의 처녀들의 경우 취직을 시켜준다는 미명 하에 정신대(挺身隊, 원명은 근로정신보국단이며 줄여서 근로정신대, 위안부와 혼동해서 쓰기도 한다)로 강제 동원하여 최전선 사지에 배치하여 노리개로 쓰고는 전쟁이 끝났을 때는 군수품처럼 버려졌다. 동남아시아의 대다수 나라의 상황도 이와 비슷하죠, 거두절미하고 자신들은 ‘원폭 피해국가’라는 이슈만을 부각시키는 형편이니 역지사지를 모르는 민족이지요.
Q6. 전시기획의 주제가 있다고 들었다. 지금까지 어떤 분야 그림을 주로 전시 했는가?
A. 이번 전시기회의 소재로써 각국의 작가들에게는 그림을 구상하고 그릴 내용으로는 〈전쟁과 평화〉라고 잡았습니다. 2차 세계대전 뿐 아니라 전쟁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드러난 것이 우크라이나이지 시리아, 예멘, 수단, 콩고 등 지구촌 곳곳에서 지금도 끊이지 않는 것이 전쟁인 듯합니다. 전쟁과 평화는 대칭이 되는 말이지만 실은 평화를 갈망하는 인류의 염원을 담은 뜻이기도 합니다.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이란 나라가 있는데요, 그곳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님(부부)들의 인솔 하에, 전문작가들 30여명을 초청하여 일본을 내방하게 하고 전시를 하곤 하였습니다. 저들도 일본에 대한 호감이 클 뿐 아니라 일본인들의 호감도 커 욕구가 서로 맞았던 것 같습니다.
Q7. 20여년을 살면서 지역사회에서 귀한 일도 한 걸로 아는데요, 지역사회 인사라 함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A. 제가 그동안 일본 오사카에서 한국어를 가르쳐 왔습니다. 계층도 다양하구요. 인원도 적지 않은 숫자입니다. 공무원, 변호사, 주부, 대학생, 교사 등 약 50여명에게 꾸준하게 한글과 한국어를 가르쳤더니 제가 전시를 할 때마다 그들이 곧 지역의 인사로서 축하를 해주곤 한답니다.
Q8. 아 그랬었군요. 한국어 선생으로 활동한 것이 갤러리를 알리고 홍보하는 데, 큰 기여를 했겠군요. 한일문화교류의 가교요, 전도사 역할을 한 것이네요.
A. 전시관을 알리는 데는 그만이죠. 매우 홍보효과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20여년 전시기획 일을 하는 동안 그림을 통해 예술로 승화시키는 일을 했다고 자부합니다. 한일 간의 가교 역할이기도 하지만 이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 작은 일이라 할 수 있죠. 변화는 아주 미미합니다만 분명코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한국의 위상과 변화를 저들이 감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Q9. 일본 체류기간 일본인들의 작은 변화들이지만 그것을 감지하는 것은 예민한 문화적 촉이 있어야 보일 듯한 데 현지의 사정은 어떤 지 말씀해주시지요.
A. 일본인이 한국을 다 싫어하는 게 아니잖아요? 마찬가지로 한국인도 일본을 다 나쁘게 보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일본인들은 예의 바르고 친절하죠, 일본정부와 달리 민간은 한국을 좋아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더군다나 최근에는 K-POP 한류문화가 일본에서도 크게 불어 한국에 대한 인지도는 예전과 많이 달라져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일본이 역사공부를 하지 않는 점이죠. 일본의 침략의 역사는 가볍게 뭉뚱그려 넘어가고 또 당연히 전쟁과정에서 짓밟힌 타민족의 인권과 전쟁범죄에 대해서는 가벼이 여기려는 경향이 있죠. 전쟁에는 복합성이 깔려 있죠. 베트남전쟁에서 한국군이 잔인했잖아요(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제 대한민국의 위상이 커지면서 일본의 만행에 대해 호소하고 국제사회와 연합하니 부각이 되는 것이라고 봐요. 정치적으로 역사적으로는 뒤지지만 문화적 현상만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지요.
Q10. 일본인 중에도 여러 자료들을 가지고 20년 후에는 한국이 일본을 앞지른다고 주장하더군요. 가능한 일인가요?
A. 재미있는 통계인데요, 2022년도 GDP순 도시순위를 평가한 자료를 언론에서 보았는데요, 놀랍습니다. 10위는 상해, 5위 파리, 4위 서울, 3위 런던, 2위 뉴욕, 1위 동경입니다. 아직은 일본이 돈이 많다는 의미로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는 속담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20년 후의 일본은 디지털, 인터넷, 사이버 대응이 안 되어 세계적으로 뒤처질 겁니다. 일본정부도 사실을 알고 그 방면에 재정을 투입하고는 있습니다만, 아직도 인감 도장문화가 자리 잡고 있어 정부의 행정이나 시민사회의 삶의 체감도는 전 세계적 흐름과 견주어 매우 뒤쳐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Q11. 정치 문화 관습 등의 변화과정은 멀고도 험하죠. 일본이 왜 이리 되었다고 평가하는가?
A. 그것은 정치적 이유가 큽니다. 한국은 총선거를 하면 투표율이 80%에 육박하죠. 하지만 일본은 그 절반을 약간 웃도는 48% 투표율 수준입니다. 국민들 대부분이 대체로 정치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 투표자 중에 70%정도는 60대 이상 노인층의 투표수입니다. 70, 80년대 잘나가던 향수가 있는 세대, 땀 흘리고 부흥과 성장을 일궈냈던 전후세대들만이 정치에 관심이 큽니다. 반면에 젊은이들은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거나, 정치적 의사나 민의의 정치적 반영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니 아직도 도장문화가 있고, 카드나 인터넷에 불편함을 호소하는 노인네 계층의 의견이 정치에 반영되는 보수적 구조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Q12. 이번에 김광용 사진작가선생님이 오사카 갤러리에 2점을 출품하는 걸로 아는데, 그 작품의 특징은 무엇인가?
A. 말 그대로 ‘전쟁과 평화’입니다. 2개의 작품의 제목은 ‘매 발톱’과 ‘금 초롱’이구요. 작품제작 방식과 크기, 그리고 사이즈까지 상세하게 제시했다는데 특징 있습니다.
『필자와의 인연』
김광용 사진작가선생님과는 약 4년 전부터 교제해오고 있는 친구 같은 귀한 분이다. 인천에서 한부모들을 격려하고 배려하는 의미에서 제가 초대를 했다. 작가선생님의 사랑은 한이 없어 제가 드린 작은 강사료에 몇 배에 해당하는 헌신과 투자를 통해 가족사진이 예쁘게 담긴 가족 카렌다를 제작해주었다. 한부모가족돌봄센터 위대한맘들에게는 일생 최대최고의 선물이 되었을법하다. 김광용선생님에 의해 소개받은 강영선관장님 또한 한일문화교류의 전도사로서 일본 오사카에서 20여 년째 앞장서 나라를 지키는 봉화대의 망루처럼, K-POP 컬처의 저변을 지키는 문화첨병이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