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축복대박기도회 시리즈 (11)

 

최종인 목사 ∣ 중앙대학교 언론학석사, 서울신학대학교 목회학석사, 신학박사를 졸업하고 미국 United 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박사를 이수했다. 공군군목, 오하이오한인학생선교회 대표 및 성결대학교, 서울신학대학교 외래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평화교회 담임이다. 저서로는 『노년 커뮤니케이션』, 『The Table』, 『암환자 돌봄사역』, 『시니어사역』 ,『회색 코뿔소 앞에 선 다윗』『church@메타버스』 등이며 공저로 『장례예식설교』가 있다.
최종인 목사 ∣ 중앙대학교 언론학석사, 서울신학대학교 목회학석사, 신학박사를 졸업하고 미국 United 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박사를 이수했다. 공군군목, 오하이오한인학생선교회 대표 및 성결대학교, 서울신학대학교 외래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평화교회 담임이다. 저서로는 『노년 커뮤니케이션』, 『The Table』, 『암환자 돌봄사역』, 『시니어사역』 ,『회색 코뿔소 앞에 선 다윗』『church@메타버스』 등이며 공저로 『장례예식설교』가 있다.

예수님은 부에 대해 아무 반대도 하지 않으시지만 부를 의심스럽게 여기십니다. 시장 경제는 개인 소유, 부의 생성, 교환 및 축적을 기반으로 합니다. 이러한 현실은 많은 사회에 너무 깊숙이 박혀 있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개인적인 부의 추구와 축적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았듯이 예수님은 부의 축적 자체를 합당한 목적으로 보지 않으셨습니다. 일이라는 것이 자신의 만족이나 자기 이익만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부도 이웃에 대한 깊은 관심과 함께 사용해야 합니다.

 

1. 적당한 재물로 만족하라.

부에 대한 예수님의 관심은 부유한 사람들은 재물이 하나님을 대체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12:34). 예수님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이 그들이 가진 것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삶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해 정의된다는 것을 인식하기를 원하십니다. 누가는 그것을 강조합니다. 즉 우리가 하는 일이 예수님과의 만남으로 근본적으로 변화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부는 우리를 삶의 변화에 ​​완고하게 저항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현상 유지, 독립, 우리 방식대로 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합니다. 영원한 삶은 하나님(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의 삶이며, 하나님을 대신하는 재물은 궁극적으로 영원한 죽음으로 인도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9:25). 부유한 사람들은 자신의 재물로 인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에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도리어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6:20). 이것은 미래의 보상에 대한 약속이 아니라 현재의 현실에 대한 진술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방해가 될 재물이 없습니다.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6:25). 적당한 재물이 필요합니다. 너무 많은 재물은 조심해야 합니다.

 

적당함을 넘어선 재물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해

 

2. 죽을 준비를 하라.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12:13-21)는 이 주제를 극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부자의 땅은 소산이 풍부하여 그 사람의 창고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할까?” 그는 걱정하고 헛간을 허물고 더 큰 헛간을 짓기로 결정합니다. 그는 재산이 많을수록 돈에 대한 걱정이 줄어들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재산이 얼마나 텅 비어 있는지 깨닫기도 전에 그는 더 가혹한 운명인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가 죽을 준비를 할 때 하나님의 조롱하는 질문은 양날의 검입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12:20). 어리석은 부자와 같은 당신은 자신이 준비한 것, 즉 하나님이 없는 사후의 삶, 참된 죽음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가 풍년을 사용하여 궁핍한 사람들을 부양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12:21). 어리석은 부자의 문제는 남을 위해 일자리나 번영을 가져다주지 않고 자신을 위해 쌓아두는 데 있습니다. 이것은 그가 하나님보다 재물을 사랑하고 가난한 자에게 관대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부를 가볍게 여기는 부자, 궁핍한 사람에게 후하게 베풀거나 더 나은 방법으로 진정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데 돈을 투자하고 성장하는 노동력을 고용하고 자신의 일에서 정의와 공정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부자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그러한 사람들을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예를 들어, 아리마대 요셉, 23:50). 그리고 우리 주변 세계에서. 그런 사람들은 삶과 사후에 축복을 받습니다.

 

3. 재물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부자 관원과의 예수님의 만남(18:18-30)은 역시 재물에 대한 예수님의 생각을 보여줍니다. 부자 관원은 그의 재물이 하나님에 대한 그의 열망을 완전히 대체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선한 선생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묻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에 대한 대답으로 예수님은 십계명을 요약하십니다. 관원은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18:21)라고 대답하고, 예수님은 그의 말씀에 따라 그를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재물이 그 사람에게 작용하는 부패한 영향력을 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는 그에게 부의 해로운 영향력을 끝내는 방법을 제안합니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18:22). 하나님에 대한 가장 깊은 갈망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아들과 매일 개인적으로 친밀해지는 초대에 분명히 뛰어들 것입니다. 그러나 부자 통치자에게는 너무 늦었습니다. 부에 대한 그의 사랑은 이미 하나님에 대한 그의 사랑을 능가합니다.그 사람이 큰 부자이므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18:23). 예수님은 그 증상을 아시고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18:24-25)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부유한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약식 심판이 아니라, 부의 유혹적인 힘이 엄중하게 움켜쥐고 있음을 관찰한 것입니다. 예수님과 관원의 곁에 섰던 사람들도 자신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재물의 유혹을 이길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깨닫고 절망했습니다(18:28). 그러나 예수님은 절망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18:27). 하나님 자신이 재물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의 힘의 근원이십니다.

예수님과 부자 관원(이미지 출처: www.FreeBibleimages.org)
예수님과 부자 관원(이미지 출처: www.FreeBibleimages.org)

 

4. 재물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

부자의 복지는 부에 관한 예수님의 유일한 관심이 아닙니다. 그는 또한 가난한 사람들의 복지에 관심이 있습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12:33).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지속적인 관심은 누가복음 1:46-56과 평지에서의 설교(6:17-26), 그리고 실제로 누가복음 전체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16:19-31)에서 그것을 요점으로 가져옵니다. 이 부자는 호화로운 옷을 입고 사치스럽게 살고 있지만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어가는 나사로를 돕기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습니다. 나사로는 죽지만 부자도 죽습니다. 부자는 결국 큰 힘이 없다는 것을 상기시켜줍니다. 천사들은 나사로를 하늘로 데려가는데, 분명히 그의 가난 외에 다른 이유가 없었습니다(16:22). 아마도 부에 의해 대체된 적이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부자는 분명히 그의 부(16:23) 외에는 아무 이유 없이 하데스(또는 지옥)에 갑니다. 부자의 의무는 나사로가 할 수 있을 때 그를 돌보는 것이었습니다(16:25).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위한 자신의 공간을 다시 찾고 비참한 종말을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그는 많은 부자와 같이 자기 가족을 돌보며 장차 임할 심판을 경고하고 싶었으나 율법과 선지자에 계시된 하나님의 더 큰 가족을 돌보는 것이 슬프게도 부족하여 한 사람도 죽은 자 가운데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그것을 고칠 수 있습니다.

 

5. 재물을 지혜롭게 사용하라.

슬기로운 관리인의 비유(16:1-13)는 돈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것의 중요성을 가르쳐줍니다. 보통 옳지 않은 청지기의 비유라는 소제목이 붙어있는 말씀은 쉽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주인의 재산을 낭비한 것이 발견된 한 관리인. 2) 그 소문을 듣고 그를 불러 해고를 예고하는 주인. 3) 그 위기 상황에서 끌어들일 대상으로 청지기가 결정한 주인에게 진 빚이 있는 사람들. 4) 그리고 이 사건의 중요한 배경이 되는 주인의 재물입니다. 문제의 주요인물인 청지기는 얼핏 보기에도 불의한 일을 했습니다. 주인의 소유를 관리하는 것이 직무인데 오히려 주인의 소유를 낭비하였기 때문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해고감입니다. 이 위급한 상황에서 잘리지 않으려고 관리인은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불러 그들의 부채를 탕감해 줍니다. 그 이유는 자명합니다. 직무에서 쫓겨나면 땅도 팔 힘도 없고 구걸은 창피해서 못 하겠고,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고 앞으로 살 길을 준비하자! 아이러니한 것은 그의 태도입니다. 돈으로 저지른 부정을 다시 돈으로 해결하는 청지기의 얄팍한 지혜가 엿보입니다. 청지기가 주인의 재산과 돈을 관리했기 때문에 주인은 자신에게 빚을 진 사람들의 부채 범위를 몰랐습니다. 그 상황을 고려한 청지기는 해고 이후의 삶을 준비하기 위해 소위 잔머리’(지혜로움, 민첩성)를 굴립니다. 빚을 감면받은 사람들은 그가 해고될 경우 그 은혜를 갚기 위해 그를 어떤 방식으로든 도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이 비유를 통해 말씀하시는 것은 청지기의 잔머리를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지혜롭게 사용한 점에 주목하자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6:8,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주인이 칭찬한 이유는 자기 시대에서 빛의 자녀들보다 더 슬기롭다(wiser than)’입니다. 세계는 재정 계획가들과 경제 전문가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기독교인들 역시 전문가는 아니지만 돈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현명한 돈 관리에 대해 말할 때, 그들은 가장 중요한 종류의 장기 투자를 하는 것을 잊고 있습니다. 바로 영원을 향한 안목을 가지고 영원한 집을 향한 투자입니다.

 

6. 탐욕을 조심하라.

누가복음 12:13-15을 보면, 군중 속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스승님이라고 부르면서 자기 형에게 유산을 나눠주도록 일러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누가 나를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며 거절하십니다. 군중 속 그 사람의 말처럼 예수님은 스승이십니다. 하지만 재물에 대한 재판관이나 중재자가 아니심을 당신 입으로 분명히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거절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이어서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12:15). 이 짧은 말씀은 몇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유산을 나눠주도록 일러달라는 요청은 어떻게 보면 재물과 관련하여 공평하지 않은 처사를 바로잡아 달라는 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런 요청의 이면에는 재물에 대한 욕심, 곧 탐욕이 자리잡고 있음을 간파하신 것입니다.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는 말씀은 곧 구원이 재산, 돈과 관계가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생명은 재산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계속해서 우리 속에서 일어나는 탐욕을 경계해야 합니다.

 

7. 먹고 사는 것을 걱정하지 말라.

의식주는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의식주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으면 누구나 걱정하게 됩니다. 설사 당장의 의식주는 해결할 수 있다 치더라도 내일, 그다음 날, 이렇게 미래의 의식주에 대한 대책이 없으면 이 또한 걱정거리입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더 좋은 의식주를 마련하려고 애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시는 말씀은 정반대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공중의 새들은 씨도 뿌리지 않고 거두지도 않고 쌓아둘 곳간도 없지만 하나님께서 먹여주시는데 너희들은 새들보다 훨씬 더 귀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도 늘리지 못하는데 왜 걱정하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피었다가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꽃도 하나님께서 입히시거늘 너희들이야 얼마나 더 잘 입히시겠느냐는 것입니다(12:22-28). 세상 사람들이 들으면 정신나갔군!’ 하고 조롱하며 업신여길 그런 말씀을 예수님께서는 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너희를 새들보다도, 들풀보다도 훨씬 귀한 존재로 여기신다는 것을 강조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잠자리를 걱정하는 것은 우리를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부족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거듭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12:28-30).

 

의식주의 염려에서

하나님을 향한 신뢰로

따라서 제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먹고 마실 것을 걱정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굳은 신뢰를 바탕으로 그분의 나라”(12,31) 곧 하나님의 나라를 찾는 일입니다. 그러면 의식주에 필요한 것들도 곁들여서 받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더욱 안심시키십니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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