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축복대박기도회 시리즈 (8)

 

최종인 목사 ∣ 중앙대학교 언론학석사, 서울신학대학교 목회학석사, 신학박사를 졸업하고 미국 United 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박사를 이수했다. 공군군목, 오하이오한인학생선교회 대표 및 성결대학교, 서울신학대학교 외래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평화교회 담임이다. 저서로는 『노년 커뮤니케이션』, 『The Table』, 『암환자 돌봄사역』, 『시니어사역』 ,『회색 코뿔소 앞에 선 다윗』『church@메타버스』 등이며 공저로 『장례예식설교』가 있다.
최종인 목사 ∣ 중앙대학교 언론학석사, 서울신학대학교 목회학석사, 신학박사를 졸업하고 미국 United 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박사를 이수했다. 공군군목, 오하이오한인학생선교회 대표 및 성결대학교, 서울신학대학교 외래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평화교회 담임이다. 저서로는 『노년 커뮤니케이션』, 『The Table』, 『암환자 돌봄사역』, 『시니어사역』 ,『회색 코뿔소 앞에 선 다윗』『church@메타버스』 등이며 공저로 『장례예식설교』가 있다.

베푸는 계절, 베풀 기회가 많은 그리스도의 계절입니다. 우리가 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 사역과 대의를 지원하기 위해 재정적으로 기부하는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빌립보서를 읽는 것을 고려해 보십시오. 빌립보서는 깊은 신학과 엄청난 실용성을 혼합합니다. 이 편지는 반복해서 예수님을 아는 기쁨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모든 일에 비추어 살아가는 교회를 묘사합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우리에게 모든 교회의 목표, 모든 그리스도인의 목표는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닮아가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빌립보서 4장에서 바울은 이런 종류의 삶과 관대한 정신이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나는 이 구절이 우리의 헌금에 대해 성경적으로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이 구절을 살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우리가 빌립보 교회를 특징짓고 모든 그리스도의 백성을 특징짓는 종류의 관대함을 계속 추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교회를 지원하기 위해 돈을 주어야 합니까?

 

1. 베푸는 것은 자비롭다.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4:14). 바울은 사역을 하는 동안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빌립보 사람들은 친절과 연민의 행동으로 그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재정적 지원을 보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라 할지라도 고통을 쉽게 이기거나 면역이 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당신은 고통스러운 시련을 견디고 있는 목사, 교회 개척자 또는 선교사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상처를 싸매 주는 사역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선교사들에게는 재정 지원이 절대적입니다. 자비량으로 선교한다 할지라도 선교사들에게는 물질적 후원이 매우 큰 힘이 됩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공격을 시작했을 때 대부분 사람들은 경악했고, 우크라이나는 얼마 못가서 점령당하게 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예상 밖으로 우크라이나는 선전하고 있고, 오히려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가 큰 곤란에 빠지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선전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방 국가들의 전쟁물자 지원입니다. 마찬가지로 선교사들에 사역 현장에서 영적 전쟁 중입니다. 그들에게는 성도들의 베푸는 사랑이 무척 큰 도움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애쓰는 기독교 사역을 헌금으로 지원할 때, 당신은 매우 자비로운 사람입니다.

 

2. 헌금이 곧 사역이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4:15). 바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주목하십시오. 빌립보 사람들은 헌금할 때 바울의 사역을 지원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사역에 동역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의 선교 활동에 대한 재정적 지원 덕분에 그들 스스로도 그 일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기부는 단순히 기독교 사역을 지원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주는 것은 바로 사역하는 것입니다. 물론 물질 후원이 아닐지라도 당신이 선교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선교지에 당장 필요한 것은 당신의 헌금입니다.

 

3. 주는 것이 현명하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4:17). 무슨 땅이나 건물, 주식에 투자해 본 적이 없고 투자에 대해 잘 모르지만 여기에 내가 아는 것이 있습니다. 현명한 투자, 성공적인 투자는 수익을 낳습니다. 투자로 돈을 꽤 번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성경이 복음 사역에 우리의 자원을 투자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이것이 지혜로운 일임을 거듭거듭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풍성한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17절을 보십시오. “나는 궁극적으로 당신의 돈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사도 바울은 강조합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바울은 단순히 예수께서 제시하신 원칙을 따랐을 뿐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6:19-20). 예수님은 이생에서 모든 종류의 것에 투자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지상의 보물은 우리에게서 빼앗을 수 있습니다. 범죄자가 훔칠 수 있습니다. 시간과 나이가 흘러가면 보물들을 닳게 하고 파괴할 수 있습니다. 시장은 붕괴되어 이익을 감소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전한 또 다른 종류의 투자가 있습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왕국을 건설하는 선한 사업에 투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의 나라에 투자하면 놀라운 수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4. 주는 것이 예배이다.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4:18). 바울은 구약성경에서 단어를 빌려와 헌금을 제사로 바꾸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희생을 통한 예배에 대한 명령을 읽을 때 이런 종류의 언어가 반복해서 나옵니다(1:9). 바울은 이 향기로운 제물과 받아들일 만한 희생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분명한 요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빌립보 사람들이 그에게 보낸 선물은 예배 행위였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다고 말할 때, 그가 드린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를 하나님과 의롭게 만드는 것은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희생입니다. 그를 믿는 믿음만이 우리의 용서와 영생의 기초입니다. 그러나 구약에서 희생은 이스라엘 예배의 일부였으며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줄 때 그것으로 예배합니다. 기부는 단순히 사람이나 사역을 지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는 것은 단순히 명령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상으로, 헌금은 주님께 진심 어린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당신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당신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나는 기꺼이 당신의 자원을 당신의 일을 위해 기꺼이 드립니다.”

 

5. 주는 것이 안전하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4:19). 대부분의 투자에는 위험이 따릅니다. 실제로 주변 사람들 가운데 투자에 실패해서 매우 곤란을 당하는 사람들을 압니다. 그리고 이것이 종종 우리가 베푸는 데 어려움을 겪는 분명한 이유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투자하는 것은 매우 안전합니다. 주님께 헌금하고 교회 사역을 지원한다면 내 삶의 모든 일에 충분할 것입니다. 19절에는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는 놀라운 약속이 나옵니다.

 

6. 나는 드리지만 하나님이 책임지신다.

빌립보서 4:19에 대해 알아야 할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 구절이 하나님을 일종의 자판기처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당신이 약간의 현금을 넣으면 그는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축복을 쏟아 부을 것입니다. 그 거짓 가르침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나라와 슬프게도 온 세상에 조장되고 있습니다. 물질적 축복을 부어주실 수 있도록 현금을 보내라고 하는 이른바 번영복음은 거짓말입니다. 참 복음의 축복은 이생의 물질적 부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그와 함께하는 영원한 영광입니다. 둘째로 당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필요하다고 아시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지혜안에서 그분은 당신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많은 것들을 보류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랑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선을 위해 이 일을 하고 계시다는 것을 항상 신뢰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격을 갖추고 이 놀라운 소식을 한 번 더 들으십시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7. 헌금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주는 것은 긍휼이요, 주는 것은 봉사이며, 주는 것은 지혜롭고, 주는 것은 예배이며, 주는 것은 안전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풍성하신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리를 돌볼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가장 큰 소망은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언젠가 우리를 자기 나라로 인도하실 하나님이 영광을 세세무궁토록 받으시는 것입니다. 20절에서 바울 사도는 선포합니다.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그동안 빌립보 교회에 권면하였고, 감사하였고, 자신이 받은 은혜를 간증했습니다. 결국은 그의 인생의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고백합니다. 사실 우리가 인생을 사는 목적 가운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보다 더 큰 동기는 없으며,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줄 수 있다면, 그것은 그분께 영예를 돌리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베푸는 것을 포함하여 모든 그리스도인의 미덕이 그의 은혜 아래서 일어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빌립보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4:23)라는 말로 끝맺습니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 기독교 사역을 지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 기도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 교회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당연히 교회 사역을 지지합니다. 예배도 드리고 기도도 쉬지 않습니다. 그러나 은혜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베풀어주신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모든 것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생활 목적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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