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샤웨)을 보지(메르오트) 말게 하시고 주의 길에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하에니)”(시119:37).
이 전염병 재앙의 시기가 이제 삼 년의 기간에 들어섰다. 오미크론 전염병 환자들이 일일 13만 명을 넘어서게 되니, 교육부는 대면 수업으로 학교에 등교하는 계획을 발표했다가 급히 바꾸어서, 2주간 원격 교육을 허용한다고 변경하였다. 방역지침도 경제활동의 위축에 그만 자유롭게 바꾸고 있다. 인원 통제의 규제를 해제하는 상태가 되었다. 점점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초 증가 추세에 들어섰다. 이러한 때에 외부활동은 우리를 불안하게 하며 주위에 확진자로 인해 활동이 제한되고 자가 격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을 보면서 나도 그 자리로 갈 수 밖에 없는 상태가 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 말씀에 초점을 맞추며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말씀(토라)시편인 시편 119편 33-48절은 알파벳 헤와 와우 구절들이다. “내가 두려워하는(야고르티) 비방(헤르파티)을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하아베르) 주의 규례들(미쉬파테이카)은 선하심이니이다”(39). 이 코로나 19전염병 감염은 주위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비난(비방, 헤르파티, 부끄러움)을 받게 하며 보건소에 검사를 받게 되면서 불안에 싸이게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로 보아야 한다. 전염병에서 보호하는 영적 방패라고 생각해야 한다. 시편 91편의 전염병의 구원 시편에서 천 명이 왼쪽에서, 만 명이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7절). 이 혼돈의 시기에 우리는 탐욕(바짜)으로 향하지 않게 하며 허탄한 것을 보지 않아야 한다(36-37절). 어려운 경제 재앙의 시대에 사람들이 파산하고 가게를 닫는 모습을 보면서 언제까지 이 경제 공황이 계속 될 것인지 불안하게 바라보게 된다. 이러한 때일수록 우리는 주의 법도(주의 의)를 사모하며, 말씀을 끝까지 지킬 수 있어야 한다(33절, 40절). 그러면 다시 살아나게 되리라 말씀하신다(40). “내가 주의 율법을 항상 지키리이다 영원히 지키리이다...또 왕들 앞에서 주의 교훈들을 말할 때에 수치(에보쉬)를 당하지 아니하겠사오며”(44, 46). 이 공포와 불안, 재앙과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매일 주님의 말씀에 주목하며 주님께 아뢰며 살아가게 된다. 생명의 길로 걸어가며 구원받는 삶은 무엇일까? 그 삶의 태도는 바로 말씀을 즐거워하고 암송하고 묵상하는 삶일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주의 계명(베미쪼테이카)들을 스스로 즐거워(에쉬타아샤)하며 또 내가 사랑하는 주의 계명(미쪼테이카)들을 향하여 내 손을 들고 주의 율례들(베후케이카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이다(아시하)”(47-48). 이 말씀의 삶은 이 진노의 시대에 구원받는 은혜의 살아가는 비결이다. “내가 주의 법도(피쿠데이카)들을 구하였사오니 자유롭게 걸어갈 것이오며(에트할레카 바르하바)”(45). 이러한 말씀의 삶을 살아가며 영적 혼돈의 시대에 승리하며 살아갔던 선구자들이 바로 선교사였다.
허인수(P. E. Haines) 선교사가 1935년 8.22일 성결교 잡지였던 활천 편집자로 이명직 목사 대신에 이사회에서 임명된다. 1925년 경성성서학원 14회 졸업사진 뒤에 허인수 선교사가 이건, 이명직, 레티 카우만, 이정원, 최석모, 박현모 교수 등과 함께 중심에서 찍힌 사진을 볼 수 있다. 선교사의 권위적인 입장과 한국 목사들의 자립과 자치 운동이 대립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허인수 선교사는 이명직 목사와 함께 성결교회 헌법을 약사, 교리, 행정, 이사회, 교회, 연회에 관한 규정 등을 기록한다(1933년, 1936년 11월). 성결교 초기에 ‘조선 야소교 동양선교회 성결교회’라고 하며 교회 헌법은 이명직 목사와 더불어 편집 발행하게 된다. 교회 헌법이 신약 성경의 규정에서 성령의 해석으로써, 은혜법으로 적용하는 것이 필요한데, 교회분리를 줄이고 교회 일치를 가지는 것이 환원운동의 정신이다.
폴 헤인스(허인수)는 만성 총회장 미시건 임마누엘 성결교회 출신으로서 서울신대 교장을 역임하며 최장수 한국 체류 선교사로서(1960년대까지) 서울신대 교수로 재임하였다. 하나님의 성서학교가 한국 성결교회에 의미하는 바에 대해 말한다. 한국 선교사들의 인생 형성기와 한국 성결교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폴 헤인스 가족들은 부모와 두 형제, 두 자매가 하나님의 성서학교를 졸업했다. 폴 헤인스의 다른 처남 로렌스 올크니는 한국에 선교사로 와서 부흥 지역에서 시일, 밀러, 라센, 해리 우드스, 윌리엄 헤슬롭 등과 더불어 예배 인도, 전도, 천막집회, 마을 복음화, 전진 운동, 센터교회 개척과 확장을 하며 1년 동안 3만 명 예배 참석, 71만 명 가량 복음을 들었고, 13만 5천명의 어린이들이 주일학교에 참석하였다. 10개 센터의 교회들이 세워져갔다. 한 선교사의 헌신과 협력 선교는 어둠의 조선 땅을 밝게 복음으로 비추는 역사가 일어났었다. 오늘도 이 빛의 역사는 또 다른 주의 종들을 불러서 복음 전도자로 세우고 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