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
1.1. 최근 뉴스
최근 미국 팍스 뉴스는 최근 ‘정치와 팬데믹으로 목사들의 번아웃(탈진)이 급증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지난 2023년 3월 바나그룹에서 조사한 연구를 토대로 42%의 목회자들이 ‘사역을 그만둬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고 전제하며 이 수치는 2021년 1월에 비해 약 13% 증가한 수치라며 우려를 표했다. 이들을 탈진하게 만드는 요인으로는 ‘스트레스'(56%)가 가장 높았으며, 외로움(43%) 그리고 정치적 분열(38%), 가정사(29%) 순으로 나타났다.
1.2. 한 목회자의 고백
어떤 목회자는 자신의 목회적 위기 상황을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담임 목회 10년쯤 되었을 때 탈진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늘 몸이 피곤하고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고 그냥 혼자 있고 싶었습니다. 사람을 만나기도 싫고 전화 받는 것도 귀찮았습니다. 그렇게 재미있고 은혜롭던 설교 준비하기도 싫어졌습니다. 심지어 주일날 새 교우가 찾아오는 것도 반갑지 않았습니다. 책을 붙잡고 책상에 앉아 읽으려고 해도 내용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렇게 된 이유는 10년 동안 쉬지 않고 일을 미련하게 많이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40세에 담임이 되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사역을 했습니다. 정말 전력 질주를 했고 목양일념으로 뛰었습니다. 새벽에 나와 새벽기도를 인도하고 낮에는 설교 준비, 행정, 심방을 하고 저녁에는 성경공부 또는 가정심방을 하고 거의 밤 12시가 다 되어 집에 들어갔습니다. 시간이 아까워서 20분 거리에 있는 집에 가지 않고 교회에서 대충 저녁을 해결했습니다. 아예 일주일에 이틀은 교회에서 잠을 잤습니다.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은 일주일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할 정도였습니다. 한참 아버지가 필요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 결과 자녀들과 관계가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라고 고백하였다.
1.3. 성경의 일례.
성경에도 그러한 예를 모세의 경우를 예를 들을 수 있다. 출애굽기 6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학대와 고통에서 건져내 어 주시기 위하여 모세를 보내신다.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말씀을 들려준다. 그러나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해 주시겠다는 말씀을 들은 그들의 반응은 의외로 냉담하다.
“모세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나 그들이 마음 상함과 가혹한 노역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더라”(출애굽기6:9)라고 하였다.
이것은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목회 대상으로 삼고 있는 성도들에게서 받는 인상과 같다. 목회자들이 기도와 성경을 연구하여 말씀을 준비하여 들려주는데도 듣지 않으려 한다. 복음-기쁜 소식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기쁜 소식으로 들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관심도 없을 때가 많다.
여기에 목회의 어려움이 있다. 이것은 목회자인 나의 고민이며, 아마 모든 하나님의 일군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마차 입맛에 맞는 단것만 먹으려 하고 밥을 먹지 않으려는 자녀에게 밥을 먹어야 하는 엄마의 마음과 같다.
왜 그들은 들으려 하지 않을까?
내가 목회를 시작하면서 늘 마음 속에 생각하던 고민이었다. 내가 수많은 시간을 기도하면서 말씀을 묵상하고 성경을 연구하면서 준비하여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데 듣지 않는 성도들을 볼 때 안타까움이 있었다. 그래서 설교와 성경공부가 책망의 메시지로 변질되어 전하게 된다. 물론 하나님 말씀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했지만 성도들은 더 들으려 하지 않는다. 주의 일군들은 한 번쯤 경험하셨을 것이다.
출애굽기6:9에는 “마음의 상함”과 “일의 혹독함” 때문에 모세의 말을 듣지 않았다고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수많은 학대와 고통 속에서 마음의 상처를 갖게 되었고, 일의 혹독함 때문에 심신을 지치게 하였다. 그 결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가져야 할 소망과 믿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구원해 주겠다고 했지만 듣지 않았다. 목회자로서 안타까움을 넘어 그들의 태도에 분노하기도 한다.
모세 또한 자기감정을 이기지 못했다. 이스라엘 백성을 학대하는 애굽 사람을 쳐 죽이고 그것이 발각되어 광야로 도망하였다.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에게 가서 40년 세월을 자기의 양이 아닌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치면서 보내야 했다. 양들을 이끌고 호렙산에 가까이 갔는데 떨기나무에서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않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겨 가까이 다가갔다.
하나님께서 가까이 오는 모세를 보고 “발에서 신을 벗으라” 명한 후에 그의 이름을 불러 이스라엘을 인도할 지도자로 삼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이런 신비한 체험과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음에도 자신이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하고 하나님께 반문하였다.
하나님이 이적을 행하는 능력을 주시겠다고 해도 모세는 듣지 않고 자신이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라고 다른 핑계를 댔다. 입과 혀를 지으신 분이 해주게 하겠다고 해도 움직이지 않는다. 하나님은 결국 모세를 죽이려 하고 아내 십보라가 깨닫고 아들의 양피를 베어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하니 놓임 받아 그때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성경 전체에 흐르고 있는 인간들의 모습이다. 또 현대 우리가 목회 대상자로 삼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하나님을 떠나 죄악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완악한 모습이다. 골로새서1:21에는 이런 사람들의 마음 상태를 말씀해준다. 악한 행실로 하나님을 떠나 마음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산다고 했다. 그러니 그들이 쉽게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또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삶이나 마음 상태가 병들어 있다.
2. 목회자의 탈진의 개념과 정의
연세대 신학과 권수영 교수는 “근본적으로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타 전문가에 비해 쉼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적어 탈진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가장 빠른 예방책은 교회가 나서서 담임목사에게 1년에 최소 4주 이상 무조건 안식과 충전의 시간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 교수는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심리적 부담감도 크다. 완벽주의와 좋은 목자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는 게 급선무”라며 “스스로 자신의 부족함과 모자람을 받아들이고 모든 교인을 기쁘게 해주려는 강박을 버리면 쉽게 탈진에 빠지는 일은 피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목회자의 완벽주의와
좋은 목자 콤플렉스가
목회자 탈진을 가중해
미국 라이프웨이기독교연구소장인 톰 레이너 박사는 최근 “많은 목회자들이 ‘아니요’라는 말을 언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며 “권한을 위임하는 데 서툴거나 주변에 책임을 함께 나누고 관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다면 탈진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탈진(burn-out)이란 미국의 정신분석학자인 허버트 프로이덴이 그의 저서 탈진: 큰 업적에 대한 대가라는 책에서 처음 사용한 말로서, “어떤 주장이나 삶의 방식, 혹은 누군가와의 관계를 위해 전력을 기울였는데, 기대했던 성과가 나오지 않는 데서 오는 일종의 피로 및 좌절 상태”라고 정의한다.
목회에 이 단어를 적용하면, 목회에서 더 이상 무언가를 할 만큼의 새 힘이 없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상태를 말한다. 목회자가 목회 현장에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변화가 없고, 목회의 열매가 없으며, 교인들 역시 아무도 자신의 노력과 희생을 알아주지 않을 때, 스트레스 받는 정도를 넘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고, 아무런 의욕이 없는 영적 상태를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목회자는 이런 탈진된 상황 속에서도 목회를 포기하지는 못한다. 억지로, 무기력하게 어떻게 해서든지 목회를 끌고 나가는데, 그것이 목회자 자신뿐만 아니라 이런 목회자의 돌봄을 받는 교회에도 심각한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3. 목회자 탈진에 나타나는 현상들
2. 1. 삶의 기쁨 상실 현상:. 목회자 탈진의 초기 증상으로서, 목회와 삶에서 웃음이 없어진다. 사소한 일로서 간과하기 쉽지만, 사실 아주 큰 증상이다. 목회 사역에 대한 스트레스로 더 이상 웃을 일이 없고 웃을 수가 없다.
2. 2. 만성적인 피로 현상: 항상 몸이 피곤하다. 힘도 없고, 의욕도 없어지며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잠을 많이 자도 항상 피곤하다. 주 중의 안식일을 가져도, 휴가를 다녀와도 재충전이 되지 않는다. 만성적인 피로로 인해 목회 능률이 떨어지게 된다.
3. 3. 목회 사역의 열정 상실 현상: 물론 모든 사람이 이따금 자신의 직업에 대한 열정이 사그라질 때가 있다. 그러나 목회의 탈진으로 인한 열정 상실은 목회의 원동력을 잃어버리게 만든다. 물론 지금 감당하는 목회 사역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더 이상 그 일에 대한 기쁨도 동기도 느끼지 못하게 된다.
4. 4. 영적 메마름 현상: 다른 말로 목회자가 목회하는 이유인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여전히 설교를 위해서 성경을 읽고 기도도 하지만 형식적인 일이 되어버린다. 말씀에 대한 은혜도 없고, 감동도 없다.
4. 탈진의 종류
인간의 몸은 신체와 영, 마음의 복합체가 이루어진 하나의 유기체이기 때문에, 목회자가 겪는 탈진의 종류는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아래의 나타난 탈진의 종류 중 하나 혹은 두 개 이상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4. 1. 육체적 탈진
육체적 탈진은 운동의 부족,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으로 생겨날 수 있다. 지나친 교회 업무와 바쁜 일정으로 목회자가 운동할 시간과 건강한 식사를 할 시간조차 없으며, 스트레스로 가득한 목회로 인해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한다. 이러한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육체적 탈진은 만성두통이나 복통을 유발하고 만성피로를 느끼게 한다.
4..2. 감정적 탈진
다른 사람의 감정을 돌보고 치유하는 목회자가 정작 자신을 감정적으로 돌보아줄 사람이 없을 때 느끼게 되는 탈진이다. 목회자 역시 여느 다른 사람처럼 함께 슬퍼하고 기뻐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특히 감정적 탈진은 목회자의 결혼과 가정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감정적 탈진은 목회자의 공감 능력에 무디게 만들고, 정상적으로 감정을 느끼는데 장애를 주며, 실패와 자기 의심을 가지게 한다.
이러한 감정적 탈진은 관계적 탈진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사람과 관계를 맺는 직업인 목회자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탈진의 형태로서, 교인이나 목회 사역에 관련된 사람과 불편한 관계에서 야기된다. 매일 진을 빼는 인간관계는 목회자가 관계적 탈진을 느끼게하고, 그러한 인간관계로부터 점점 자신을 단절하게 된다.
4.3. 영적 탈진
교인의 신앙과 영성을 책임지는 목회자이지만, 자신의 영성에 소홀하며 다른 사람들 영성에 더 노력할 때 영적 탈진을 느끼게 된다. 바쁜 일정으로 많은 목회자는 자신들의 영성을 위해 할애할 시간이 없으며, 이에 따라, 목회자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홀해진다. 설교나 예배가 아닌 자신의 영성을 위한 기도나 성경 읽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지 않으면 영적 탈진으로 고통받게 된다.
5. 미국 목회자의 고백 속에 나타난 탈진 현상
2023년도 바나 연구소에서 인터뷰로 조사한 미국 목회자의 탈진 현상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화이트 목사는 “팬데믹이 시작하고 정부에서 나온 방침을 따르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야 했다. 라이브중계, 카메라 문제, 웹사이트에 파일을 올리는 문제 등 많은 기술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수개월이 지난 후 그는 번아웃으로 고통받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화이튼 목사는 “8개월이 지나자, 그는 ‘어떤 결정을 해도 교인들을 행복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소위 ‘결정 피로'(decision fatigue)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언급했다.
그는 “우리는 마스크를 써야 했기에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을 봤으며, 마스크를 쓰지 않았을 때는 왜 정부 방침을 따르지 않느냐고 불평하며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을 봤다. 어떻게 해야할지 방향을 잡을 수 없었다. 결국 영혼이 탈진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20여명의 목회자들과 대화를 나눴다는 화이트 목사는 “은퇴연금을 조회해보지 않은 목회자들은 없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이 돈으로 충분할까? 얼마나 버틸수 있을까?’ 스스로 물어보며 불안해 했다"고 언급했다.
일리노이즈 침례교회의 담임목사인 드레인 코딜 목사는 교인들이 목회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부담을 가중시킨다고 설명했다.
코딜 목사는 “오늘날 교인들은 목회자들을 성경적으로 인도하는 영적 지도자로 보지 않고, 교회라는 조직의 CEO처럼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며 “성경과 분리된 기대심리가 목회자와 그 가족들을 힘들게 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트럭 뒤에 서서 예배를 진행하거나, 라이브 스트리밍을 통해 예배를 드리며 어려운 시기에 희망을 주려는 목회자들을 많이 보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들과 그 가족들은 갈수록 탈진해 갔다"고 말했다.
종교단체의 재정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이드스톤(GuideStone)의 목회자 복지부분 디렉터인 덴스씨는 목회자들의 사역 영역을 넘어서는 분야에 대한 교인들의 기대가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댄스 디렉터는 “사람들은 목회자들에게 전문분야도 아닌 정치와 팬데믹에 대한 해답을 요구한다. 그들은 정치와 경제의 전문가가 아니다. 만일 목회자들이 목양, 설교, 예배와 같은 하나님의 소명에 집중한다면, 갑작스런 은퇴를 고민하는 목회자들은 훨씬 덜 할 것이다"고 언급했다.
그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고 말한 세례요한의 말을 떠올린다.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망상으로부터 벗어날 때 우리는 좀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6. 이민 목회 현장의 탈진
필자가 목회하는 대상이 이민자들이었기에 더 많은 문제들이 있고 갈등과 힘들어 하는 것들이 많았다. 그러면서 성도들이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근본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만약 이 문제를 통해 성도들을 온전히 이해하고 그 문제들을 극복하지 못하면 필자의 애쓰는 수많은 목회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했다. 목회자가 단순히 사람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구원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인격과 삶이 변화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게 하는데 있다면, 그들을 좀 더 근본적으로 이해해야 했다.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구체적으로 해결 방안을 찾아 목회방법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성경도 더 깊이 연구하기 위해 보기도 하고, 책도 읽어 보았다. 다른 목회자들의 설교나 세미나를 참석도 해보면서 근본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성도들과 대화도 많이 나누어 보았다.
복음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교회에 나왔지만 그들의 상처와 고달픔으로 복음을 들을 마음이 없이 히브리서의 말씀한대로 마음이 강퍅한 사람들, 설교는 듣지만 복을을 받아들 이지 못하여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성도들도 있었다. 삶의 문제와 갈등 속에 잠시 위로 받는 듯하나 다시 그 문제와 어려움 속으로 나가야 하는 사람들, 말씀을 배우고 제자훈련도 하지만 가정문제, 직장 문제, 자녀문제, 미래문제 등을 안고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을 바라보고 이해하려고 했다.
신앙의 연륜과 오랜 신앙생활로 직분도 가지고 있으나 신앙의 확신과 기쁨과 행복보다 지치고 힘들어 하는 성도들의 모습들, 부부간에도 대화도 단절되고 갈등과 상처 속에 자녀들 에게도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부부들도 많다. 정체성 혼란으로 미국 사람도 한국 사람도 아닌 어정쩡한 청소년들, 부모의 이혼으로 깨어진 가정의 상처 난 자녀들,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뛰면서 일하지만 여전히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는 생활 속에 허덕이는 성도들의 모습, 겨우 교회 나와 예배에 참석했지만 설교를 듣기보다 잠 한숨이라도 편히 자기를 바라는 지친 성도들의 모습은 나에게 커다란 도전이었고 과제였습니다.
이민교회가 가진 많은 문제들은 이런 이민생활 속에서 오는 갈등과 어려움 속에 지치고 상한 영혼인 성도들의 문제로부터 시작된다. 교회에 나와 주목받기 원하고 상실감과 후회감을 보상 받고 인정받기 원하기에 어느 정도까지는 신앙생활을 잘 하는듯 하나 직분이 주어지고 주목받기 시작하면 결국 갈등을 일으키고 그러다 자기를 알아줄 듯한 교회로 옮겨가게 된다.
그래서 교회 Shopping이란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일부는 교회에 나와 의자를 덥혀 놓고 간다고 해서 bench warmer란 말도 생겨났다. 목회자는 이런 성도들을 상대로 목회하다 보니 눈치를 안 볼 수도 없고 보자니 목회자로서 갈등이 커간다. 기껏 직분자로 세워 놓으면 교회에서 말썽을 일으키거나 맘에 안 듣고 안 알아준다고 다른 교회로 가버리니 성도와 목회자의 관계가 제대로 정립되지 못하는 고민들이 쌓여 있다.
예배와 찬양, 훈련과 말씀 공부, 경건의 생활에는 등한시하고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성도들의 모습은 한국의 교회도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이 됩니다. 교회를 다녀도 적당히 다니고 깊게 빠지면 안 된다는 것이 젊은 세대들 속에 팽배하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과 예배 드리는 일에 점점 관심이 없고 들으려 하지 않게 된다.
7. 예수님의 목자의 심령에서 얻는 교훈
이런 필자의 오랜 시간의 고민 속에 예수님은 어떠하셨는지 살펴보게 되었다. 예수님 께서는 죄인을 구하러 오셨을 뿐 아니라 의원으로서 오셔서 병든 자를 치료하시고 구원하러 오셨다는 사실은 저에게 큰 도전의 말씀이었다. 예수님은 소외되었던 병자들을 찾아가셨고, 문둥병자나 중풍병자, 베데스다 못가의 누워있던 병자, 수가성 우물가에 나왔던 여인, 삭개오, 세리들을 찾으셨고 만나 주셨다.
예수님 당시에도 대제사장이나 제사장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등 수많은 기득권 사람 들은 들으려 하기보다 누리려 했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예수님은 병든 자, 소외된 자, 버림 받은자,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아가셨고 배고픈 영혼들을 먹이셨고 병든 자는 치료하셨으며 고독한 자들의 친구가 되어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사역이었고 목회였다. 예수님이 구원자이실 뿐 아니라 치료자였다는 사실은 저에게 큰 깨달음과 함께 도전을 주었다.
미국의 교회들이 과거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 심각한 위기를 맞고 가정과 개인생활과 사회 속에서 심각하게 병들어 가는 세대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교리 싸움이나 교회를 키우는데 힘을 쏟다 보니 이제 미국교회가 일부 지역이나 큰 교회들을 제외하고 젊은 장년 세대부터 청년, 청소년, 어린 주일학교 학생들을 잃어버렸다. 그 젊은 세대들이 교회를 멀리하면서 많은 미국 교회들이 노인들이 주를 이루는 교회로 점점 쇠퇴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인터넷 발달로 정보가 열려지고 시대는 빠르게 변하는데 교회는 그 변화를 올바르게 인도하지 못하고 따라 가기도 힘들다. 젊은이들에게 외면 받다 보니 노인화가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하나의 한국 교회를 향한 경고이기도 하다. 이미 한국교회도 점점 젊은이들에게 흥미를 잃어가고 교회를 소외된 영혼들을 돌보지 못하여 교회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창세기1:2에 나오는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의 세상 모습처럼 혼돈하고 공허하며 무질서한 모습이 사람들의 모습일수도 있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깊은 어두움에서 헤매며 마약, 섹스, 도박, 이혼의 상처 등 세상의 타락과 갈등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을 향해 교회는 관심이 없다. 그들도 교회가 하는 복음을 들으려 하지 않지만 교회 또한 말 잘 듣는 사람들 모아 큰 교회를 세우기 원하지 그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구원하고 치료하여 새사람을 만들 마음을 갖지 못한다.
필자는 교회를 비판하기 위해 이런 것을 논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결국 목회 대상으로 삶아야 할 성도들과 세상 사람들의 문제를 직시하고 그들의 문제를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치유하고 구원할 목회사역이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우리의 교회들도 머지않아 노인들만 자리를 지켜야 할지 모른다.
필자는 데이빗 A 씨멘즈가 지은 [상한 감정의 치유]를 읽으면서 처음으로 상한 감정 즉 내면의 상처란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1990년대 초반이니 아직은 내적치유에 대한 이론이 제대로 세워지기 전이라 신선하고 새롭게 눈을 뜨게 했다. 나도 책을 쓰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이 내용은 1990년대 중반쯤 썼던 책을 다시 한 번 정리해서 쓰는 것이다.
지역사회 신문에 글을 게재하면서 세미나와 상담및 치유사역을 했고 목회적용을 하면서 오랫동안 이론과 목회 그리고 임상실험인 실제 상담과 경험을 통해 정리된 이론이다. 나름 도움과 도전을 주기도 했고 내적 상처에 대한 이론이 많지 않아 어려움이 있었지만 목회자이기에 많은 면에서 적용도 하고 세미나와 상담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 뒤에 여러 기독교 서적, 심리학 책, 정신과적인 책들을 다양하게 보면서 양쪽에서 인간의 심리와 내면 문제를 좀 더 관심 갖게 되었다. 제가 여러 책들을 보면서 목회자적인 관점과 기독교적 관점에서 재정립하고 이론을 세우도록 힘썼다.
즈금은 전공한 사역자들도 나오고 많은 책들도 나오고 있으니 참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이 된다. 기독교가 구원의 사역일 뿐 아니라 성령을 통해 치유와 변화와 영적 변화가 중요 사역임을 생각할 때 교회 밖에서 이루어야 할 일이 아니다. 교회 안에서 그리고 많은 목회자들이 바르게 내적 치유사역을 이해하고 목회에 적용해서 성도들을 구원하고 치유하여 새사람으로 변화시키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생활을 하도록 변화시켜야 할 책임과 목회자와 교회에 있다고 본다.
내적 치유사역을 이해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생활을 하도록 도와야
문제는 성령신학의 혼란으로 기도생활과 성령의 체험에 대한 부족을 보게 된다. 성령의 사역이 좀 더 체계화되고 내적 치유와 연결되었으면 좋겠다. 아울러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이 기독교적 관점에서 받아들일 것을 받아들여서 단지 심리 치료나 정신치료가 아닌 성령의 치유와 회복을 통해 근본 영성치유와 내면의 치유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인간 개인의 인격과 삶의 변화, 나아가 육신의 소욕을 따르고 죄에 빠져 살던 삶이 예수를 믿고 구원받을 뿐 아니라 내면의 상처와 쓴뿌리(히12:13)까지 치유가 되고 삶이 어그러지지 않고 올바른 길을 살아가도록 완전히 새로워지는 치유사역이 이루어졌으면 한다(히12:11-12).
일부에서는 이런 내적 치유에 부정적인 시선도 있다. 성경에서 벗어난 세상적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을 의존하거나 심리치료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내적 치유가 일부에 의해 내면의 상한 감정을 치유하면서 심리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세상적이지만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인간의 내면에 대한 분석이나 관찰은 오히려 더 잘 살펴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내적 상처를 공부하면서 내면의 상처들은 다른 면에서 보면 그 뿌리가 죄의 상처와 결과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내적상처가 미치는 영향력을 살펴봐도 사실 비슷하게 나타난다. 단순히 심리나 정신 문제를 넘어서는 영적인 영역이 있고 죄의 문제도 있기에 사람의 내면을 살피는데 있어서 분석은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을 의존하지만 그 문제에 대한 완전 치유를 접근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역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인간 내면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치유하는 것은 단순히 심방이나 상담 등으로 이루어질 것이 아니다. 그 상처를 누구에게 받았던지 그 출발은 죄이며, 이런 죄가 뿌리가 되어 쓴뿌리가 되고 상처로 남아 상처받은 사람들의 인생 속에 영향을 미치며 많은 경우에 이것은 다음 세대로 이어지 면서 연결고리처럼 계속해서 영향을 미친다. 죄와 똑같은 영향력이다.
많은 한국 교회가 이런 상하고 상실한 영혼들을 관심도 갖지 않거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겨우 심방기간에 간단한 심방으로 그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려고 한다. 예배와 설교는 은혜를 받는 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각 개인의 마음을 터치해주고 개인적으로 예수님과 성령님의 구원과 치유와 회복으로 새롭게 함을 얻도록 해주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결국 내적 치유는 예수께로 돌아가는 것이며, 성령의 사역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역사다.
예수 안에 죄와 사단의 유혹과 세상의 타락과 멸망으로 부터 완전한 구원이 있으며, 그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와 도우심으로 완전치유와 전인적 회복이 있기 때문니다 (롬8:26-30). 목회자는 성도들이 자신들의 목회 사역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은 성도로 살 뿐 아니라 성령의 치유와 회복하심을 통하여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로 세워가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목회자로 세우신 목적이기 때문이다. 나의 목회의 목표는 다음 구절이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복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골로새서1:19-23)
8. 목회 현장에서 탈진 문제 해결 요청
탈진으로 인해 두 차례 목회의 큰 위기를 겪었던 윌로우 크릭 교회 빌 하이벨스 목사님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탈진의 증상을 네 가지로 설명했다. 안타깝게도 그는 결국 장기 목회에 실패를 하고 사임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진단한 목회자 틸진 현상은 오늘 우리 목회 현장에 반면교사가 된다.
첫째, 참을성이 없어진다. 영어로 Short temper라고 표현한다. 주위에 있는 사람에게 쉽게 화를 낸다. 특히 교회에서 부교역자들에게, 집에서는 사모와 자녀들에게 너무 자주 화를 내게 된다. 그리고 참을성이 부족해진다.
둘째, 만성피로(Fatigue) 현상이 나타난다. 항상 몸이 노곤하고 피곤해진다. 힘이 없고 의욕도 없어진다. 아무 것도 하기 싫어진다. 잠을 아무리 자도 몸이 개운하지 않다.
셋째, 사임하고 싶은 마음이 강해진다. 당장 목회를 그만두고 싶어진다. 그냥 현실을 도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목회 자체가 스트레스를 주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과 관계가 멀어져 있다고 느낀다. 이것이 목회자로서 가장 위험한 일이다. 여전히 기도도 하고 성경도 읽고 설교준비도 하지만, 그것은 형식적일 뿐이다. 전혀 은혜가 없고 감동도 없다. 그저 공허한 종교행위에 불과할 뿐이다.
필자가 내적 상처 치유에 관심을 갖게 된 첫째 이유는 내가 목회하는 대상인 성도들의 상태에 대하여 이해하려는 마음에서 출발했다면 두 번째 이유는 목회자의 상처와 탈진이었다.
목회자로서 앞에서 진단해 본 목회 대상자인 성도들이나 전도 대상자인 세상 사람들의 상태가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같다. 애굽에서 노예로 전락해서 마음 상함과 일의 혹독함으로 인해 듣지 않았다고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들으려 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마음의 상처와 혹독하고 힘든 생활은 사람들의 마음의 벽을 쌓게 만들어 강퍅한 마음을 갖게 합니다. 겉으로는 듣는 듯 하나 실제로는 듣지 않으며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런 목회 대상자들을 상대해서 목회하다 보면 처음에 뜨겁고 확신에 찼던 목회자도 점점 힘들어지고 갈등과 어려움을 많이 겪게 된다. 환자가 병과 싸울 때 의사 또한 함께 싸우는 것이니 힘들고 지치게 마련이다. 목회자들 또한 마찬가지다. 거기에 성도들마다 각각 다른 수많은 문제들을 함께 싸워야 하고, 설교, 구역모임, 성경공부나 제자훈련, 새벽기도나 기도생활 너무 많은 사역들이 또한 지치게 만든다.
교회도 성장시켜야 하고, 목회자 자신도 영적으로 자라고 무장해야 하고 할 일은 많고 해야 할 것도 많다. 스트레스도 점점 늘어가지요. 목회가 힘들어도 믿음과 정신력으로 처음에는 잘 이겨내 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도 모르게 지쳐간다. 어느 순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탈진이 소리 없이 다가온다. 이런 목회자의 탈진 문제는 십년 이상 목회한 목회자는 다 겪는다. 한 교회에서 목회하는 목회자들 중에는 더 많이 겪기도 한다.
한 교회에서 오랫동안
목회한 경우 탈진이 더 심해
다른 한 가지는 목회자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던 상처와 목회하면서 격는 상처들이다. 많은 목회자들이 목회자가 되는 과정에서 과거의 아픔과 성처들은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 가고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만나는데 도움이 되었다. 목회자 중에는 그런 힘들고 어려운 과거 때문에 예수님을 만나 믿고 변화되어 뜨거움과 열정으로 똘똘 뭉친 목회자들이 상당수 있다.
문제는 그들이 은혜가 넘치고 구원의 확신 속에 있을 때에는 별 문제없이 지나깠다. 그러나 목회 현장에서 수많은 성도들과 수많은 문제들을 직면하면서 자신의 내면 속에 자리 잡았던 상처들이 점점 드러나면서 문제를 일으키고 여 러 면에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목회를 하면서 성도들로부터, 다른 목회자들로부터 상처를 받는 일들이 생기다 보면 내면의 상처들은 더 커져 가고 결국 이런 상처들이 자신에게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목회 사역을 통하여 목양하는 성도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엄마가 약을 먹거나 매운 것을 먹으면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목회도 성도들에게 목회자 개인이 겪는 내면의 경험과 상처, 쓴뿌리는 성도들 에게 영향을 미친다. 목회는 힘들어지고 성도들은 강퍅해지고 문제들은 잘 해결되지 않는다. 위염같은 위벽에 난 성처들이 오래동안 낫지 않고 반복해서 상처로 남으면 그중 어떤 사람은 위암이 되는 것처럼 내면의 상처도 그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릴 만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목회가 힘들어지면 스트레스는 더 커지고 갈등도 커진다. 과연 주님이 원하시는 목회를 하고 있는 것인지 회의가 들기도 하고 목회자들 간에 경쟁의식은 점점 탈진을 가속시키기도 한다. 열정을 다해 목회하고 기도하며 아꼈던 성도들이 다른 교회로 옮겨가는 경쟁은 목회자를 가장 절망하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목회의 갈등과 상처는 대부분의 목회자가 격는 문제다. 목회 기간이 길어지면 더 커지는 경우도 많다. 목회자에게 안식년을 행하는 교회도 있지만 현실에서는 시도하기 어렵거나 일년이 아닌 몇 개월이나 잠깐 동안 휴식으로 대처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목회자들에 대한 문제는 선교사들이나 교회 내의 사역자들, 그리고 선교단체나 기관에서 일하는 사역자들에게도 다가오는 문제다. 그래서 대부분 교단이나 선교기관에서는 선교사 들을 위해 안식년을 주기도 하고 상담이나 치유를 위한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사역자들이 상처도 많이 받고 탈진도 많기 때문이다.
이런 목회자들의 상처와 탈진 문제가 단지 안식년을 주고 휴식을 준다고 도움은 되겠지만 근본적 해결점은 될 수 없다. 그런 목회자들을 위한 영성치유와 회복 프로그램들이 더 많아져 도움을 받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목회자 자신들의 내면 상처 이해와 바른 치유와 회복을 통해 목회자가 성령 안에서 치유와 회복과 변화를 이룬다면 목회는 더 활력이 있고 교회가 살아나는 부흥의 불길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목회자가 변화되어야 교회 변화되고, 목회자가 은혜 받아야 교회가 은혜가 넘치고 목회자가 평안해야 교회가 평안하며 목회자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고 믿는다. 성도 백 사람을 구원하고 변화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목회자 한 사람의 변화와 치유는 성도 백 사람의 변화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금은 목사가 되었지만 제 조카가 저희 지역 교단 교역자 수련회에 참석했다. 조카가 목사님들을 보더니 제게 물었다.
“왜 목사님들은 머리가 다 하얀 거에요?” 대답은 “목회하느라 힘들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렇지!”였다.
더 정확히 말하고 싶은 말은 “목회하느라 상처받고 탈진을 경험하면서 스트레스 받고 힘드니 그렇지!”였다. 저를 포함해 약 30명 정도의 삼, 사 십대 목사들이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하얀 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질문한 것이다.
목회자만큼 상처받고 힘든 사람들도 없을지 모릅니다. 사람을 다루는 직업은 대부분 힘든다. 교육자, 의사, 목회자들이 그렇습니다. 목회자는 단순히 신앙만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다루고, 설교하고 가르치고 훈련할 뿐 아니라 그들의 삶과 가정생활까지 변화 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뿐 아니라 어쩌면 평생 나아가 영생의 삶까지 책임지고 변화 시키고 바른 삶을 살게 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3:12에서 말씀하셨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라고 물으셨다.
목회자는 땅의 일을 말할 뿐 아니라 하늘의 일을 말해야 한다. 육적인 일을 말할 뿐 아니 라 영적인 일을 말해야 한다. 눈에 보이는 것을 말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기적과 구원을 전해야 한다. 복음을 전해야 하고 십자가를 전해야 하고 부활을 전해야 한다. 듣지 않는 그들…들으려 하지 않는 그들을 향해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눈에 보이지 않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전해야 한다. 그러니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러니 탈진도 되고 갈등과 상처와 아픔도 겪게 된다.
오늘날은 목회자와 교회가 인정받지 못하는 시대다. 사실 목회자들이 만든 불신하게 하는 많은 것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목회자가 주의 종으로 일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틀린 것이 아니라 그런 목회자들이 아무리 큰 교회를 이루고 화려한 업적을 이루었고 유명하다 해도 그들이 틀린 것이다. 목회자는 주의 뜻대로 행해야 하는 주의 종이니까 말이다. 자기 이익과 자기 이름을 위해 목회하는 것이 아니라 바울처럼 주의 종으로서 주님이 하시는 것처럼 해야 하니까.
“예수라면 어떻게 했을까?” 이 질문은 목회자가 일평생 가져야 할 자기 질문이며 지속적으로 위기 목회와 탈진을 극복할 수 있는 해답이다.
예수라면 어떻게 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