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박사】 유관순 열사의 마지막 스승, 지네트 선교사

  • 입력 2025.03.27 07:50
  • 수정 2025.03.27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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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배 교수의 구약 이야기 (409) - 구약성경과 선교 이야기 (221)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쉬르 하마아로토 아도나이 바짜라타 리 카라티 와야아네니)”(시120:1).

봄의 기운이 완연(完然)해졌다. 사람들은 봄을 느끼려 들로, 산으로, 강으로 나아가 얼었던 마음의 위축을 풀려고 한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더욱 하나님과 교제를 친밀히 하며 어려운 나라의 상황과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려는 작업이 요구된다.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궤사한 혀에서 내 생명을 건지소서(아도나이 하찌라 나프쉬 미쉬파트 쉐케르 밀라숀 레미야)”(시120:2). 세상은 거짓 정보와 거짓 홍보로 사람을 미혹하게 한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기 때문에 세상의 거짓된 말에 쉽게 현혹되지 않는다. “너 궤사한 혀여 무엇으로 네게 주며 무엇으로 네게 더할꼬(마 이텐 레카 우마 요시프 라크 라숀 레미야흐)”(시120:3). 이 시편 120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로서 다윗이 사무엘의 죽음 이후에 시편 120, 121편을 지었다고 본다. 시편 120-134편은 올라감의 노래,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로서 예루살렘 순례 시편이다. 이는 오늘 우리들도 하나님을 만나러 올라가는 것을 노래한다. 이 올라감을 통해 바로 인생의 문제를 풀 수 있는 것이다. 곧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남으로써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고백이다.

다윗의 승승장구의 배경에는 사무엘의 후원과 기도가 있다고 보고 사울은 사무엘의 서거 후에 더욱 큰 분노로 다윗을 추격하였다. 더욱 다윗을 헐뜯는 사람은 에돔 사람 도엑으로 나타난다(삼상 22:22; 삼상 26:19). “장사의 날카로운 살과 로뎀 나무 숯불이리로다(히쩨 깁보르 쉐누님 임 가할레 레타밈)”(시120:4). 날카로운 살은 ‘여호와께서 헐뜯는 자에게 가져다 주는 응보’를 나타낸다. ‘로뎀나무는 히브리어 르타밈, 많은 잔가지가 있으나 잎은 별로 없는 나무 같은 관목으로서 곧 금작화라고 부르는 식물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금작화에서 오늘 아랍인들은 엄청나게 뜨거운 불을 일으키는 양질의 숯을 만든다. 이는 조롱과 희롱, 말거리를 통해 상대를 헐뜯고 공격함으로써 분노의 불이 나와 화를 불러일으키는 상태를 비유한다.

“메섹에 유하며 게달의 장막 중에 거하는 것이 내게 화로다(오야 리 키 가르티 메쉑 샤칸티 임 오홀레 케다르)”(시120:5). 다윗이 망명한 땅이 바로 메섹과 게달인데 이는 광야에서 다윗이 쫓겨 다니던 광야의 땅이었다. 다윗은 환난 중에 쫒겨 다니며 부르짖는 노래가 바로 이 성전의 노래(무교절, 칠칠절, 초막절의 성전 순례시)로서 서론과 서곡에 해당하는 15편의 성전 순례시 중에 하나이다. 이는 하나님을 만나려는 겸손한 영혼, 갈급한 영혼들의 모습이 실려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복과 풍족함을 얻는 계기가 된다(시34:8, 10). “내가 화평을 미워하는 자와 함께 오래 거하였도다 나는 화평을 원할찌라도 내가 말할 때에 저희는 싸우려 하는도다(라바트 샤케나 라흐 나프쉬 임 쇼네 샬롬 아니 샬롬 웨키 아다베르 헴마 라밀하마)”(시120:6-7).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비진리, 인본주의 삶을 사는 사람들과의 경쟁과 경계 속에 살면서 그들에게 따돌림을 받고 살기 쉬운데 신앙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화평을 원하며 평화와 공존의 삶을 추구하며 살려고 한다. “나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내가 평화를 말할 때에, 그들은 전쟁을 생각한다.”(표준새번역) 우리의 인생과 일상에서 하나님의 거하시는 성전에 올라가는 삶과 노래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쁨의 삶과 참다운 가치를 추구하는 신자와 성도의 모습을 보인다. 이 ’성전의 노래‘는 한편 역사적으로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해방된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역사적 긴 순례의 길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에게는 천로역정으로 영적인 여행, 천국으로 가는 긴 여정을 보여주는 모습이라고 본다. 우리의 삶의 자리와 공동체의 평화는 화평과 공존, 평화를 추구하며 성전 오름을 통해 그 신앙 고백을 하게 된다. 이는 그 평화의 사람과 함께 하는 하나님 자녀들의 노래와 그 찬양 속에서 그 평화가 이뤄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러한 신앙의 삶을 산 선교사가 있다.

A. 지네트 월터(1885-1977, 우백태)는 1921년 4월-1922년 10월까지 일년 6개월 이화학당에 학장으로서 섬긴다. 그녀는 미국 펜실베니아주 리트로브에서 출생하여 1911년 12월에 미 감리회에서 파송하여 선교사로 오게 된다. 서울에 와서 이화학당의 대학과 교수로서 영어와 체조를 담당한다. 월터 총장은 나중에 신촌 대지 구입을 위해 기금 마련을 위해 미국에서 모금 활동한다. 그녀는 총장을 지낸 이후에 1925년 이 년간 평양 정의여학교 교장을 지낸다. 그 후에도 1940년 모리스, 칸로와 ‘한국 클럽’을 조직하여 이화인의 미국 유학기금을 조성한다.

지네트 월터 선교사는 유관순 등 이화 학생의 독립운동을 도우며 학생 신앙 모임인 공주회를 지도한다. 이 모임을 통해 학생들의 전도 및 신앙 수련을 도왔고, 1912년 전국 여선교회가 시작될 때 서울 상동 교회에서 여선교회 활성화를 위해 활동했다. 그녀는 1919년 프라이 교장이 건강 문제로 미국으로 떠나면서 교장 업무를 대행하다가 1921년 4월 5대 교장으로 취임한다. 선교사는 학생의 보건 위생을 개선하고 행정 업무를 체계화하는데 주력하였다. 280명 규모의 심슨 홀을 증축하였고 유치원으로 100평 건물을 신축하였다. 그녀는 1920년 9월 제자인 유관순의 시신을 인수하고 장례를 치렀다. 유관순은 서대문 형무소에서 출옥을 이틀 앞두고 16세로 옥사하여 월터 교장이 시신을 인수하고 수의를 입히고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하는 장례 절차를 주관했다.

지네트 선교사와 유관순 열사, 지네트 월터 이야기(밀알북스), 임연철 저
지네트 선교사와 유관순 열사, 지네트 월터 이야기(밀알북스), 임연철 저

월터 선교사는 감옥에 있는 이화학당 학생들과 교사들을 면회하고 성경을 주고 식사를 넣어주며 교도소 선교를 지극 정성으로 하였다. 1922년 10월 6대 레베카 아펜젤러 선교사에게 이화학당 교장직을 인계하고 신촌 캠퍼스 대지를 구입하는 기금 마련 운동에 집중했다.

1923년에는 김활란 여사와 함께 세계 선교단 간부회의에 참석하여 캠퍼스 구축을 위한 기금을 요청했다. 그녀의 선교 이야기는 <지네트 월터 이야기(유관순 열사의 이화학당 마지막 스승)>제목으로 책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그녀의 자서전 초고 <진 아주머니>를 번역하고 재편집 한 것이다. 그녀는 이화학당에서 퇴임해서도 한국 전쟁 후의 이화캠퍼스 복구 활동하며 지속적인 선교 후원을 한다. 그 후 1977년 소천하기 까지 월터 선교사는 90년의 생애를 살면서 한국 사랑을 실천한다. 그녀는 조선 선교의 고귀한 생애와 헌신으로 복음의 밀알이 되어 거룩한 복음의 빛을 밝히는 한국 선교의 금자탑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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