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자주 자신에 대한 정의를 들려주십니다. 아브라함은 그 시대의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의롭게 살았기 때문에, 크신 하나님의 택함을 받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 안에 여러 가지 혜택을 누리지만, 그 또한 완전한 인간이 아니었기에 큰 실수를 두 번이나 저지릅니다.(12, 20)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책망하지도 벌을 주지도 않고 용서해 주셨지만, 자식을 100세가 다 되도록 주지 않으신 것은, 죄를 미워하시는...아브라함을 향한 보응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후에 이삭이 태어나 자라났으나, 하나님은 그를 모리아 산에서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자신의 처지가 혼란스러웠으나, 순종하기로 합니다. 이삭의 어깨에 나무를 메고 모리아산으로 향하는 아브라함은 전에 아내 사래를 누이라 거짓말을 하여 두 번이나 다른 남자(애굽왕, 아비멜렉왕)에게 시집을 보냈던 것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해결해 주심을 생각하며 다시 한 번 부끄러움과 감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그가 이삭을 바치려 할 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멈춰라! 네가 나를 경외(두려워)하는 줄 내가 이제야 알았노라!” 그때서야 하나님께서는 그의 순종과 사랑을 완전히 받아들이십니다.

신기하게도 이삭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때인데, 부모에게 배우기라도 하듯, 그 또한 똑같은 죄를 짓습니다.(26)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흰 눈같이 씻기시는 분이며, 우리 죄를 기억조차 않는다.’고 약속을 하셨지만, 성경은 곳곳에서 각 사람에게...그 행한 대로 보응 하신다(2:6)’라는 무서운 말씀도 있습니다. 그 때문일까요? 이삭도 60세가 될 때까지 자녀를 보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하나님께서 이삭의 애타는 기도를 들으시고 (25:21), 리브가의 태의 문을 여시고 쌍둥이 야곱과 에서를 잉태케 하십니다.

엄마 자궁은 태아가 혼자서 자라기도 작기도 하고 힘과 뼈를 발달시켜야 하기에, 아기는 잉태 5~6개월부터는 엄마 배를 발과 손으로 차면서 남은 기간을 보냅니다. 이를 이해하지 못한 엄마 리브가는 아이들이 싸운다고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하나님은 쌍둥이 중, 동생이 더 큰 자가 되리라!’는 말씀을 주십니다. ? 라고 묻는다면, 이를 하나님의 전능적 주권!’이라고 신학자들은 해석합니다. 동생 야곱은 형-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다고 해서 뒤를 쫓는 자, 발뒤꿈치를 잡은 자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그러나 부모님들에 의해, 이 쌍둥이 형제는 원수가 되어 헤어져야만 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아버지 이삭은, 에서를 더 사랑하며 사냥꾼으로 키웠고, 엄마는 막내 야곱을 더 사랑해서 부엌에서 자라게 합니다. 만약 이삭과 리브가가 아들을 한 달씩 바꾸어 가면서 양육을 했다면 어땠을까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면 더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두 부부가 자녀를 키우면서 조금 더 많은 대화를 했다면 그 가족이 헤어져야 하는 슬픈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합니다.

엄마를 닮아 음식을 잘하는 야곱은 평소에 갖고 싶다고 생각했던 장자권을 빌미로 배고픈 형에게 팥죽을 주었고, 형은 소중한 그 권한을 함부로 동생에게 내줍니다. 에서는 농담으로 한 말이었겠지만, 그 말 그대로 그들 삶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때, 우리의 한마디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됩니다. 결국 리브가는 남편 이삭과 상의하지 않고, ‘장자에 대한 아버지의 축복을 동생이 받게 했고, 이에 에서의 분노는 살인할 듯 하늘을 찌릅니다.

부모의 편견은 아들들을 원수로 만들었고, 야곱은 형의 복수를 피해 부모와 고향을 떠나가야만 합니다. 그 대가로 리브가는 그토록 사랑하는 야곱을 보지 못한 채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아픔을 갖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거의 모든 가정은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삭의 가정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우리 믿음의 조상들이 이렇게 살아보았더니 이런 결과가 나오니까 너희는 제발 어리석게 우리처럼 살지 말라는 것이며, 우리 가정의 삶에서도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줍니다.

내 자녀를 서로 비교하지 마세요. 내가 잔소리해서 바꿀 수 없는 것을, 입 밖으로 말하거나 비교하는 것은 무척 어리석은 일입니다. (예를 들어, 내 자식과 공부 잘하는 옆집 자식, 돈 잘 버는 내 친구 남편과 돈 못 버는 내 남편 등등)

자녀는 부모가 말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살아가는 그 모습을 그대로 따라 삽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내 말을 안 듣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아이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그 사실을 걱정해야 합니다.

오늘도 어떻게 하면 우리 가정을 행복한 가정으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거룩한 고민을 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일은 우리 믿음의 조상들도 하늘에서 소원하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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