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주의 사고의 틀을 깨고 다양성을 수용하는 사회로

산업혁명 이후 세계는 산업자본의 변화와 교통통신 수단의 발달로 국가 간의 경계가 약화되면서 서로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지구상에 있는 국경들이 무너지고 전 지구가 하나의 사회가 되는, 이른바 지구촌의 과정을 우리는 세계화라고 부른다.

이 흐름 속에 산업자본이 국제금융자본으로 변화되면서 국제노동시장에도 변혁이 일어나고 기계가 인간 노동력을 대신함으로 산업기술도 지속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저개발국 근로자들에게 타격을 주어 국제노동시장의 불안을 야기시켰으며 많은 노동자가 높은 임금과 많은 노동기회를 찾아 선진국으로 노동이주를 가속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게다가 교통통신수단의 발달로 다국적기업이 등장하면서 생존목적의 노동이주가 더욱 증가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1970년대까지 노동력 송출국이었던 우리나라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인력난이 심화되었다. 급속히 증대된 노동조합 조직화와 임금상승에 따른 3D업종의 기피 현상, 젊은이들의 이농현상으로 초래된 농어촌의 고령화로 인한 인력난 등이 그 원인이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도 합법적이고 체계적인 외국인근로자 활용정책이 절실하게 되었다. 이때 등장한 것이 산업연수생제도와 고용허가제이다.

국내 노동력 문제 해결의 창구 역할을 한 산업연수생제도’(1993.11)는 개발도상국과 경제협력 및 기업연수를 통한 선진기술의 이전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외국인력을 근로자가 아닌 산업연수생의 신분으로 고용함으로써 외국인력의 편법 활용, 연수생의 사업장 이탈, 임금 체불, 외국인근로자의 인권침해에 의한 불법체류자 양산, 외국인근로자 자국에서의 송출비리 등의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후 도입된 제도가 고용허가제’(2004)로 현재 우리나라 외국인근로자 정책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근로를 희망하는 외국인근로자는 입국 전에 자국의 송출기관에서 취업능력을 배양하고 한국어구사 능력 향상을 위한 사전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이 경우 한국어능력시험 합격자에 한하여 한국행 자격이 부여된다. 입국 후에는 사업장에 배치되기 전, 취업교육기관에 입소하여 취업교육을 이수하고 건강진단과 귀국비용보험 및 상해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외국인근로자의 체류기간은 최장 약 10(98개월)으로, 기본 3년에 사업자 동의하에 110개월 연장이 가능하다. 또한 성실근로자로 인정받으면 본국으로 3개월 복귀 후 재입국하여 410개월을 더 근무할 수 있다. 그리고 체류기간 중 사업장 이동은 3번 가능하다.

하지만 외국인근로자의 제한적 방문 노동과 가족동반불허를 원칙으로 하는 고용허가제는 외국인근로자의 정주화를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우리나라 외국인근로자 이민 정책이 다소 폐쇄적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증가하는 외국인근로자와 함께 미등록외국인(불법체류자)도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고용허가제를 통해 들어온 외국인근로자는 전문직종에도 근무하지만 대부분은 3D업종인 제조업, 건설업, 서비스업, 농업, 어업, 농축산업 등에 종사한다. 국적별로는 중국, 태국, 베트남, 미국, 우즈베키스탄 등 다양하다. 그런데 산업현장에서 이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한국어라고 한다. 입국 전, 본국에서 간단한 한국어만을 이수하고 바로 국내 현장에 투입되기에

한국에서 따로 시간을 내어 한국어를 배우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주중에 열심히 일하고 주말마다 지역에 있는 한국어교실에 나와 열심히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근로자들이 있다.

경기도 안성에는 외국인근로자들을 위해 라이온스클럽 사무실을 빌려 운영하는 한국어교실이 있다. 박정규 한국어 선생님은 이곳에서 7년째 무료로 외국인근로자들에게 사회통합프로그램교재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외국인근로자들은 고된 노동 후 주말에 휴식해야 함에도 주말이면 박 선생님의 수업을 듣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든다.

한국에 온 지 6년 차 되는 가얀 갈링가(, 29. 스리랑카)는 건설 현장에서 도장 일을 하면서 한국어 향상을 위해 토픽 2급 시험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다. 한국인의 빨리빨리문화에 적응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회사에 많은 외국인근로자가 있어 즐겁게 일하고 있다고 한다.

히말라야 산지가 고향이며 한국의 삼겹살을 좋아하는 셀파 앙파부(, 24. 네팔)본국에서 온 4명의 친구와 함께 1년 동안 자동차 부품 생산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한국어가 많이 어렵고 서툴었는데 이곳에서 한국어를 배우면서 한국어에 자신감이 생겼다고 한다.

한국에 온 지 5년이 된 제스토니도마시그(, 32. 필리핀)는 튜브 만드는 일을 하면서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다음 달에 고용허가제 계약이 만료되어 본국에 돌아가야 하지만 형편이 허락되면 꼭 다시 한국에 와서 돈을 벌고 싶다고 했다.

제조업에 종사하는 고려인 3세 덴 예브게니(, 57. 카자흐스탄)는 아내와 함께 7년째 거주하고 있는데 비자 변경을 위해 이곳에서 사회통합프로그램공부를 하고 있다.

사회통합프로그램은 5단계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시험에 합격하면 체류허가 및 영주권과 국적 신청시 가산점이 부여되거나 귀화시험 면제 혜택이 주어진다. 현재 그는 F4(재외동포) 비자로 거주하고 있지만 사회통합프로그램 시험을 통과하면 F5(영주) 비자를 발급 받을 수 있기에 늦은 나이에도 열심히 한국어 수업에 몰두하고 있다.

리리라는 애칭을 가진 방려(, 33. 중국) 역시 이곳에서 사회통합프로그램을 공부하면서 영주권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에서 중국동포와 결혼한 후 10살 된 딸과 함께 12년째 살고 있는 그는 시부모님도 모시고 있으며 중국보다 한국 생활에 더 익숙해져 있어 이제는 중국에 가고 싶지 않다고 한다.

매주 20명 남짓 모이는 이 한국어교실에는 언제나 웃음꽃이 만발한다.

열정적이고 성실하신 박정규 선생님의 가르침에 모두가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주말마다 꼬박 4~6시간 동안 앉아서 한국어를 배우는데도 피곤도 잊은 채 이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그치질 않는다. 수업 중 간간이 한국 노래를 부를 때면 흥겹도록 목청을 높이며 모두가 신명이 난다.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한국어를 배우려는 열망만큼은 한결같은 마음이다.

우리의 산업 역군, 외국인근로자!!

비록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왔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그들의 땀과 수고가 지금 한국의 산업 발전에 얼마나 고마운 힘이 되는지 모른다. 그들 또한 우리의 가까운 이웃이다.

예전에 주로 일어났던 외국인근로자의 인권침해나 임금체불과 같은 행태들은 요즘엔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외국인근로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나 차별적인 시선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특히 한국인들의 외국인근로자에 대한 차별적인 인식과 태도는 상당히 이중적이다. 선진국 출신의 전문인력에 속하는 외국인근로자에겐 호의적인 반면, 단순기능인력에 속하는 저개발국 출신의 외국인근로자에게는 배타적이다. 이런 편견과 차별적인 시선 자체가 인권침해로 이어질 수 있음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

머지않아 다문화 발전기에 접어드는 우리나라도 이제는 혈통주의를 넘어서서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함께 어울리며 공존공생할 수 있는 다양성의 축복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야고보서 29절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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