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드려 기다린 자를 주님이 세우신다

  • 입력 2020.12.2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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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사역자에게 고하는 말씀 (28)

한명철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은혜와 평강교회를 담임하며 30권의 저술과 글쓰기를 통해 복음 사역에 애쓰는 목회자다
한명철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은혜와 평강교회를 담임하며 30권의 저술과 글쓰기를 통해 복음 사역에 애쓰는 목회자다

엎드려 기다린 자를 주님이 세우신다

누가 하나님 앞에서 일으킴 받는가? 기도의 무릎을 꿇은 자가 하나님 앞에서 일어선다. 엎드려 말씀을 사모하며 말씀의 임함을 갈급해하는 영혼에게 주님의 말씀이 임한다. 엎드려야 할 때 엎드리지 못한 자는 일어서야 할 때 일어설 수 없다. 엎드리지 않고 서 있었음이 허물이 되어 단지 무의미하게 서 있는 상태를 고수할 뿐이다. 주님은 언제나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시켜 주신다. 전진하는 영혼의 소유자는 늘 나아간다. 역경에서도 좌우로 흔들리지 않으며 장벽을 넘지 못하여 몸을 돌이키는 법이 없다. 걷지 못하면 기어서라도 전진하고 날지 못하면 굴러서라도 정지 상태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렇지 않은가! 누구나 중단하면 끝을 보지 못한다. 중단하는 자에게는 열매가 없다. 기도를 하지 않는 것도 죄이지만 기도를 하다 중단하는 것도 죄다. 말씀을 기다리는 자는 중단의 시험을 극복해야 한다.

기다림의 최대 원수는 중단이다. 초조와 조급은 하나님의 때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우매자들의 전매특허다. 사탄도 기다리는데 하나님의 종 된 자들이 기다리지 못함은 참으로 수치스런 일이다. 하나님은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사 30:18) 복 된 하나님의 사람은 기다릴 줄 안다. 그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면서 기다린다. 기도하기에 일어날 때를 소망 속에서 기대할 수 있다. 말씀의 임함이 늦어도 기도하고, 기도할 힘이 없어도 기도하고, 속이 상해도 기도하고, 시험을 당해도 기도하고, 죽어가면서도 기도해야 한다. 죽기까지 중단치 않고 엎드린 자세를 풀지 않는 한 말씀은 임하고야 만다.

기도의 둥지를 튼 자만이 하나님의 신호를 안다.

일어서라는 명령은 주님 앞에 기도의 무릎을 꿇은 사람에게만 들려온다. 기도로 꿇지 않으면 말씀으로 일으킴 받지 못한다. 시대의 암울함 때문에 눈물의 기도로 밤을 보낸 사람에게 시대를 깨우는 말씀이 임한다. 병든 영혼의 치유를 위해 몸부림을 친 자에게 치유의 말씀이 쏟아진다. 자신의 사명을 깨닫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할 능력을 구하는 자에게 하늘의 외침이 들려온다. 말씀이 다양한 징조로 다가올 때 기도의 둥지를 틀었던 자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신호임을 알아차린다. 일어나 곧추서서 주님께서 지시할 방향으로 몸을 돌려세운다. 정방향이든 역방향이든 주님이 가리키는 곳으로 진군한다.

미문 앞에 꿇어 있던 걸인은 무엇을 얻을까 하여 매일 성전 앞을 지켰다. 사람들이 던지는 동전 몇 푼을 얻기 위해 하루 종일 사람들 사이를 기웃거렸다. 그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았지만 무엇을 구할까 하여 바라보는 시선에는 기도와 같은 간절함이 차 있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 앞에 엎드려 살던 베드로와 요한이 지나갔다. 평생에 걸어보지 못했던 걸인은 충분히 앉은 채로 살았다. 때가 이르렀다. 하나님은 자신의 종들을 보내 그를 일으켜 세웠다.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며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을 것을 명했다. 걸인은 일어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했다.

세상은 일어섬을 비웃어도 주님은 손 내미신다

바울이 루스드라에 들렀을 때 나면서 걷지 못한 사람을 만났다. 바울은 그에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보았다. 바울은 그를 보고 크게 외쳤다.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행 14:10) 그 사람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일어섰다. 일말의 주저나 서성거림이 없었다. 그 사람은 그곳에서 살며 언젠가 자신에게 일어서기를 명할 사람을 평생 기다렸는지 모른다. 일어설 수 없는 사람도 일어선다. 평생 한 발작도 떼지 못하던 사람도 걷는다. 당신은 잠시 주저앉아 있지만 그들은 거의 평생을 앉아 지낸 사람들이다. 일어서고 싶어도 일어설 수 없는 상황이란 것이 누구에게나 일생에 몇 번 정도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끝은 아님을 명심하라! 일으키시는 예수의 이름이 있다. 당신에게도 일어서라 명령을 전하는 주님이 계시다.

세상은 일어섬을 비웃어도 주님은 긍휼의 손을 내미신다. 일어 설 수 없는 환경에서, 엎드려 있음이 더 안전하고 정상적으로 느껴질 때 일어서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볼썽사납게 미끄러졌다 일어서려면 멋쩍을 수 있다. 넘어졌다 일어설 때는 그냥 쉬거나 잠시 앉았다 일어날 때에 비해 몸이 더 무겁다. 창피하고 쑥스럽기 때문이다. 그렇다 한들 대수랴. 하나님의 사람이 일어섬에는 세상을 의식할 이유가 없다. 그들이 당신에게 무엇을 주었던가? 냉대와 비웃음. 가시 돋친 비평이 아니었던가? 당신이 넘어지고 쓰러질 때 환호작약하던 그들이다. 당신이 일어서는 걸 반길 까닭이 없다.

일어서려는 자에게 주님은 손 내미신다

당신이 의심과 불신으로 무너졌다면 확신으로 일어서야 한다. 탐욕과 교만으로 쓰러졌다면 비움과 겸손으로 일어서야 한다. 자신감으로 깨어졌다면 자기포기로 일어서야 한다. 때로는 얻어야 얻은 것이지만 잃어야 얻음이 되는 기막힌 상황도 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잃고자 하는 자가 얻는 이런 기이한 경험을 소위 역설(paradox)이라 칭한다. 은혜의 세계에는 이런 역설이 풍성하다. 역설의 은혜에 길든 자는 하나님의 의인으로서 실족(stumbling)의 순간마다 공중제비(tumbling)를 넘는다. 과연 하나님의 사람들은 잘 무너지지 않았지만 일어설 때는 재빨랐다. 그렇게 엘리야도 일어서고 다윗도 일어서고 마가도 일어서고 베드로도 일어섰다. 당신도 충분히 일어설 수 있다. 일어서려는 자에게 주님께서 일으키는 힘을 주신다.

인생의 위기를 당해 거름무더기에 구르면서 재기의 몸부림을 치는 자에게 주님은 긍휼의 손길을 내미신다. 질병, 해고, 사업 실패, 교통사고, 재정 파탄, 가족과의 갈등, 친구의 배신처럼 피 땀 눈물로 쌓아 올린 인생의 금자탑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으로 화하는 현장을 제 눈으로 바라보아야 함은 참으로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다. 이런 일을 당하면 누구나 엎드려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로 몸살을 앓는 환자들이 지구촌 곳곳을 빼곡히 채워가고 무너진 일상의 경제 질서로 인해 서민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린 형국이다. 국가적인 전면 봉쇄에 이르지 않았음에도 사람들의 마음은 이미 닫혀가는 중이다. 통제 불능의 암울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기도인지 원망인지 신세 한탄인지 구분이 안 되는 심정으로 다만 울부짖는다. 모두가 힘들지만 자신의 형편이 최악이라 느낀다. 사람들마다 가혹한 사정이 있지만 자신의 고통보다 더한 사람은 별로 없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항상 자기 문제가 커 보이는 것은 자기중심으로 생각하는 인간의 본성 때문이다.

종국에 일어설 하나님의 백성

사실 하나님은 우리의 사정을 상황이 발생하기 이전부터 미리 아신다. 자기 백성이 고난당해 힘겨워하는데도 하나님께서 태연하심은 그 문제들을 다루시고 이루어 가실 일들을 훤히 아시기 때문이다. 지금은 누워 있고 꿇어 있고 울부짖고 발버둥치지만 오래지 않아 옷을 털고 일어나서 높으신 하나님을 경배할 자기 백성의 사정을 아시기 때문이다. 이분은 영화로우신 하나님으로서 모든 상황, 경우, 형편에서도 그 이름이 찬양받기에 합당하다. 하나님은 욥을 통해 그런 경험을 얻으셨다. 우리가 설혹 욥보다 더한 고통에 휩싸인다 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음은 하나님께서 욥의 하나님보다 더 크게 나타나실 것이 분명하다.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 중의 하나는 믿음으로 사는 자들이 어떤 고통을 겪을지라도 종국에 그들이 얻는 승리와 회복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물론 현실적인 고통이 감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말씀을 통한 확신은 큰 위로와 소망이 된다.

어둠의 운명을 알기에 우리는 자신에게 덮쳐온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빛이 임하면 어둠은 자연히 물러간다. 어둠은 빛의 도래를 알리는 문지기와 같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둠을 주시는 데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으시다. 우리 자신이 어둠을 싫어하면서도 본성은 어둠에 쉽게 이끌리는 이율배반적인 성격 탓이다. 어둠을 불러들이는 것은 우리의 자만이요 고집이며 이기심이다.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도 사정없이 비틀어버린다. 우리 모두는 솔직히 말해 은혜 안에서 꽤나 다듬어지긴 했지만 못된 종자들이다. 얼굴은 뻔뻔하고 목은 뻣뻣하고 마음은 삐딱하다. 그런 우리를 포기하거나 외면치 않으시는 것이 우리로서는 놀라운 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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