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박사】 신학 교육과 문서선교를 이끈 조원시(조지 존스) 선교사

  • 입력 2025.01.16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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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배 교수의 구약 이야기 (399) - 구약성경과 선교 이야기 (211)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아드 에트 보 데바로)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이메라트 아도나이 쩨라파테후)”(시105:19)."

2025년 을미년이 밝아왔다. 정국은 어둡고 사회 불안은 심각하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럴 때일수록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시편 105편은 역사 시편으로서 이스라엘의 예배 중에 학습된 시편으로써 시편 34편과 시편 1편, 112편, 시편 49편, 78편과 105편은 106편과 시편 37편과 더불어 구속사 역사 시편이다. 이 시편은 신정 통치의 특징을 가지며 하나님이 정의롭게 행하심을 증명한다. 문체는 찬양적 요소를 가지면서 동시에 교훈적 찬양시의 일종으로서 시편 78편과 더불어 시편 105편은 이스라엘 역사에 나타난 역사적 사건을 기술한다. 여호와 하나님의 신실한 개입을 통해 구원해 가신 사실과 언약을 파기한 이스라엘 백성의 이야기가 혼합된다. 여기서 이로 인한 심판과 징벌, 재앙과 재난을 이야기한다. 이 교훈적 찬양시는 찬양적 기사와 기적 사화를 통해 거룩한 역사를 찬양시의 문체로 말하며 시편 78편과 105편에서 공통으로 이를 이야기한다. 언약 갱신 의식을 통해 시구의 연들이 의식을 통해 병합되어 나타난다(시편 81; 95편). 시편 50편과 같은 시편의 예언적 권고는 시편 78편의 찬양적 기사와 기적 사화를 통해 나타나며 역사는 죄의 고백과 회복의 기도, 회중에서 찬양과 역사적 탄원 시편의 결과가 여기 시편 106편에서 나타난다.

역대기상 15-16장에서 역대기 기자는 다윗의 통치하에서 시온의 여호와 제의와 예배 제도와 여호와의 법궤를 이전하는 이야기를 전한다. 삼하 6장에서는 초기 역사 이야기가 전해지고 자세한 이야기는 그 역사적 조건이 다윗 시대와는 맞지 않지만, 그 역대기 기자는 그 신앙의 관점에서 역사적 시대에 맞추어 축제의 제의를 반영한다. 성전 정결과 추수의 축제와 장막절의 과정을 설명한다. 신년 축제의 제의 제도를 보이며 다윗 시대에 이 절기를 지키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특히 장막절은 솔로몬 성전과 법궤의 이전에 대한 기억을 환기시켜 봉헌하게 하며 시편 132편을 인용한다. 역대기상 16장은 시편 105:1-5; 96:1b-13a; 106:47-48절을 인용하여 성전 기사를 전한다. 이것은 추수 절기의 날들과 몇 가지 절기와 특별한 역사 사건을 말하며 그 축제 시편 세 개를 구성한다. 시편 기자는 역사적 사건들을 그 기사에서 자연스럽게 표현하며 그 축제 의식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축제 의식 속에서 구원 역사를 기억하고 시편의 정경화 과정에서 이를 편입되게 한다. 시편 30편을 사용하여 유비적 사건으로써 성전 봉헌의 축제 기사로서 사용한다. 이 시편은 주전 350년 초기에 사용된 것으로 보기 힘들다. 아마도 그 후에 약 주전 300년과 심지어 주전 250년경에 쓰여진 것으로 본다(모빙켈).

시편 104-106편은 시로 쓴 이스라엘 역사이다. 시편 104편은 자연의 무대에서 쓴 창조주 하나님을 말한다면 시편 105-106편은 이스라엘의 역사의 매 시대마다 경험하였던 하나님의 은총을 강조한다. 시편 105-106편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의 대조가 담겨 있다. 이스라엘의 배반과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실망이 담겨있고 분노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그려져 있지만, 시편 105편의 역사가는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며 아브라함의 언약과 족장언약과 요셉의 구원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을 환기시킨다. “이것은 그들에게 그의 율례를 지키고 그의 법을 따르게 하기 위함이었다(와이텐 라헴 아르쪼트 고임 와아말 레우밈 이라슈)”(시105:44). 하나님 말씀 속에서 이스라엘 역사의 회복을 기대할 수 있음을 말한다. 또한 족장의 역사 이야기와 출애굽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은 언제든지 그 언약의 신실성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음을 기억하게 한다.

“주께서 이루신 놀라운 일을 기억하여라 그 이적을 기억하고 내리신 판단을 기억하여라(지크루 니페레오타이오 아쉐르 아사 모페타이오 우미쉬페테 피우) 그의 종, 아브라함의 자손아, 그가 택하신 야곱의 자손아...그 때에 너희의 수요가 극히 적었고 그 땅에서 나그네로 있었으며 이 민족에게서 저 민족에게로 이 나라에서 다른 나라 백성에게로 떠돌아 다녔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아무도 너희를 억누르지 못하게 하셨고 너희를 두고 왕들에게 경고하시기를 내가 기름부어 세운 사람에게 손을 대지 말며 나의 예언자들을 해치지 말아라 하셨다(알 티게우 비메쉬하이 웨리네비아이 알 타레우)”(시105:5-6, 12-15). 이야기 방식으로 표현한 시(역사시)는 오늘도 하나님의 역사 속에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앤더슨). 이 시편 105편은 출애굽의 10가지 재앙을 이야기하며 구원의 역사를 이루고 아브라함의 언약을 환기를 시키며 출애굽의 근거, 요셉의 구원를 이야기한다. 또 그 구속의 역사를 이뤄가는 스토리, 그 이야기 시(詩)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구원의 역사를 조선의 땅에서 이룬 선교사가 있다.

 

조지 존스(George Heber Jones, 조원시,1867-1919) 선교사는 1887년 20세에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 선교사로 온다. 그는 1888년 5월 9일 서울에 도착하여 한국어를 배우며 아펜젤러를 도와서 배재 학당에서 수학을 가르친다. 그는 일반 교사로서 봉사한다. 이때 탁사 최병헌(1858-1927)을 만나게 된다. 배재학당에 다니던 윤치호가 그의 친구 최병헌을 존스의 어학 선생으로 추천한 것이다. 1888년 존스의 어학 선생이 된 최병헌은 5년간 진지하게 기독교를 탐구한 뒤, 1893년 2월 8일 존스에게 세례를 받는다. 이후 존스와 최병헌은 협성신학교에서 함께 활동하며 감리교 기관지인 <신학 월보>를 편찬한다. 신앙의 동반자로서 한국 감리교의 형성과 발전을 이끈다. 존스는 1892년 아펜젤러가 본국으로 잠시 귀국하자 그 이듬해에 1893년 배재학당에 교장으로 시무한다. 1892년부터는 인천과 강화를 중심으로 경기도 김포와 남양, 황해도 연안과 해주까지 선교 활동을 펼친다.

존스 선교사와 1893년 제물포에서 세워진 한국 최초 신학반 신학생들
존스 선교사와 1893년 제물포에서 세워진 한국 최초 신학반 신학생들

존스 선교사는 인천 지역의 선교로 제물포 강화지역 강화도, 교동도, 부평 지역 등에서 선교하며 여러 교회를 세운다. 또 그는 한국 선교의 역사적 과제를 이룬 엡웟 청년회 조직 청년 운동을 벌이면서 인천 최초의 교육 기관인 영화 학교를 발전시키면서 교육에 힘쓴다. 손기정 선수의 가슴의 일장기를 지워버린 동아일보 이길용 기자나 김활란, 서은숙, 김애마 학장, 김여의 교수, 영화배우 황정순 등은 영화학당 출신이다. 존스는 평신도를 위한 사경회와 성경 중심의 신학 발전을 힘쓰며 신학월보를 다시 발간하고 신학 교육에 힘썼으며 1907년 연합 감리교회의 신학교 협성신학당의 초대 학장이 된다.

1900년에 창간한 신학월보, 노란색 밑줄 부분을 보면 편집인이 조지 존스(George Heber Jones)로 나온다.
1900년에 창간한 신학월보, 노란색 밑줄 부분을 보면 편집인이 조지 존스(George Heber Jones)로 나온다.

존스는 문서 선교 활동을 많이 하며 최초의 <찬미가> 찬송가를 편찬하고 올린저 선교사가 창간했다가 휴간된 <더 코리안 레포지토리>를 다시 창간 주필이 되어 1892-1898년까지 편집하며 기고한다. 이외에 저서로서 <미이미 교회문답>1889, <감리교회 한국 선교> 1910, <한국의 교육: 기독교회를 위한 우수한 기회> 1910년 등 여러 권의 책을 썼고, 독특하고 창의적인 저서인, <한국의 교회 부흥>이라는 책을 남겼다. 특히 존스는 하와이 사탕수수 재배자 협회와 연관 한국인의 하와이 이민 사업에 후원하였다. 인천 내리교회 교인들이 하와이 이민을 많이 갔고 홍승하 전도사가 존스의 당부에 따라 이민 온 기독교인에게 신앙 지도하였다. 21세에 한국에 젊은 나이에 선교에 자원하여 헌신한 존스는, 20년간 선교를 하다가 1909년 부모를 섬기고 자녀를 뒷바라지한다. 그는 선교회 총무로 활동하다가 1919년 5월 플로리다 마이애미에서 젊은 나이 52세에 소천한다. 다시 그 이름을 기억하고 선교사의 행적을 기억하는 일은 우리가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며 다시 그 땅끝에 선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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