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베콜 하알레츠 야짜 콰왐 우비케쩨 테벨 밀레헴)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시19:4).
대한(大寒)이 지나면서 추위가 누그러지는 것 같다. 설 명절을 맞아 고향을 찾는 발길들이 무거워 보이지만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는 기쁨에 싸여 을사년 새해는 새롭게 다가오고 있다. 시편 19편은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 큰 이정표와 목표가 되어 우리의 발길이 형통한 삶을 살아가는 길을 제시한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피쿠데 아도나이 예샤림 메사메헴 레브 미쯔와트 아도나이 바라 메이라트 예나임)”(시19:7-8). 지혜로운 인생을 살아가기에 말씀은 현명한 인생의 선택과 결정을 하도록 한다. 이를 통해 시행착오가 줄어들고 복된 한 해를 살아갈 동기와 동력을 얻게 된다.
시편 19편은 이스라엘 예배 속에 찬양이며, 찬양 시편으로 보인다. 이는 성전과 시온의 찬양 시편(시 48; 84; 87; 122편) 중 시편 19편은 주의 율법을 찬양하는 시편으로서 여호와의 위대한 유익을 주고 백성들에게 율법(말씀)을 제시함으로 이스라엘이 즐겨 부르는 시편의 시로서 시편 전체의 중심, 핵심 시편으로, 그 중심에 이 토라 시편이 위치한다(시1; 119편). 여호와 하나님이 그의 백성과 개인에게 그의 축복을 주시는데 율법을 통해 수여한다. 시편 119편은 이 간구를 목적으로 크게 율법의 찬양을 제시한다. 우주적인 토라의 세계가 어떤 축복의 차원을 제공하는지 보여준다. 시편 19편은 토라(율법)의 시편으로서 창조주 하나님의 찬양과 하나님이 태양을 창조하시는 모습을 그린다. 이 시적 표현은 시편 19편에서 태양의 묘사와 말씀의 능력과 권위를 연결하여 시인이 시의 아름다운 세계를 말하며, 창조주 하나님의 가장 영광스런 선물이 이 해임을 말한다. “해는 그의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의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웨후 케하탄 요쩨 메후파토 야시쉬 케깁보르 라루쯔 오라흐)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의 열기에서 피할 자가 없도다”(시19:5-6).
이 해는 현실 물질세계에 중요한 요소로서 태양이 없으면 삶도 없음을 말한다. 태양은 피조 세계 중에 하나님이 창조한 가장 위대한 선물임을 말하는 것을 볼 때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영적 생활, 지혜를 보여준다. 이 지혜는 인간이 살아가는 가치 있는 삶과 그 인생을 향유하는 중요한 해와 같은 것이 이 지혜임을 가르쳐 준다. 해가 세상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비추어 주어 종교적이고 도덕적으로 사람을 비추는 율법, 토라임을 제시한다. 시편 토라 시편은 이처럼 새로운 창조의 세계로 이끄는 것임을 선포하고 있다. “다윗의 시, 인도자에 따라서)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라메나쩨아흐 미즈므로 레다윗드 하샤마임 메사페림 케보드 엘 우마아세 야다이오 마기드 하라키아)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나니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의 장막을 베푸셨도다”(시19:1-4). 태양 아래 아무것도 숨을 수 없는 것처럼 율법이 마음의 빛을 주며, 하여 지혜는 우둔하고 단순한 사람을 지혜롭게 하고 옳고 그름을 구별하게 하고 분별하게 한다. 주의 율법은 단순히 율례나 자의적인 규정이나 달리 있는 계명들이 아니라 계시와 은혜로 지혜가 충만하여 창조의 섭리에 있는 모든 존재의 근본적인 법이 된다. 이는 성공과 실패, 삶과 멸망의 근본적인 법을 보여주며 하나님의 도덕적인 법과 종교적인 법을 알려준다. 물리적 화학적인 법칙, 생리적인 법을 말할 뿐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생활의 율법을 계시하고 있는 특별한 자비를 준다. 이는 다른 어떤 백성에게 주어지지 않는 율법이다. 하지만 이는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에서 모든 백성에게 큰 은혜로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진다.
토라의 세계에 중요한 문제 해결은 죄, 허물, 고의로 죄를 지음, 죄과에 있음을 알려준다. 이는 창조 세계가 빛이 비침으로써 열리는 것처럼 토라(율법) 말씀이 경고와 죄의 해방과 열납되는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을 통해 영적 구원이 이루어지며 구원과 반석이신 하나님의 구원과 구속이 일어남을 말한다.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감 아베데카 니즈하르 바헴 베샤메람 에케브 라브)”(시19:11).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감 미제딤 하소크 아베데카 알 이메세루 비 아즈 에이탐 웨니케티 미페샤 라브)”(시19:13). 말씀이 빛으로 임하여 인생의 어둠과 혼돈과 흑암의 세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실존의 태양, 그 열기에 사랑으로 노출되어 생명을 얻어 살아가듯이 영의 세계가 열리고 빛의 세계를 열리는 체험이 말씀과 성령을 통해 이루어진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예수) 너희에게 이른 말은 생명과 영이니라”(요한6:63). 이 영의 세계를 시편 19편은 아름다운 시적 양식으로 표현하며 심미적 관점에서 시인은 고대의 태양신과 대조적인 관점에서 시작(詩作)을 하며(시편108편, 초기) 시적인 능력과 권위, 본래성을 가지고 토라의 세계를 아름답게 발전시킨다(시 144, 105, 136, 106, 119편, 토라와 찬양시). 토라와 태양, 말씀과 해는 우리의 영혼을 살리기에 사모할 것으로서 곧 순금, 꿀과 송이꿀 보다 더 사모해야 할 것이라 밝힌다(시편 1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이르아트 아도나이 테호라 오메데트 라아드 미쉐페테 아도나이 에메트 짜데쿠 야흐다이오)”(시편 19:9). 인생의 성공의 비결과 그 결과는 말씀의 삶과 그 성령의 빛 추구, 정결과 성결, 진실과 의로움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빛된 성공의 삶을 살아간 선교사가 있다.
베델(E.T.Bethel, 배설지, 1872-1909) 선교사는 대한매일신보 사장, 대영국인 배설지라는 이름으로 언론인 선교를 했다. 그를 선교사로서 보다는 <데일리 뉴스> 특파원으로 내한하여 러일 전쟁을 취재하러 온 영국 언론인이었다. 1904년 3월에 내한한 그는 가장 먼저 러일 전쟁의 현장인 한반도의 상황을 마주했다. 일본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러일 전쟁은 모두가 전망했던 것과 달리 일본이 승리한 결과를 낳았다. 그로 인해 대한제국의 운명은 어두워졌고 일본에 점령당하게 되었다. 그는 한국에 도착한지 4개월이 안 되어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했고 7월 첫 창간호를 발행했다. 정확히 어떤 이유로 신문을 창간했다는 기록은 없지만 양기탁, 신채호, 박은식 등의 민족지사들을 만난 후 조선인들을 대변할 신문을 창간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 일본은 영국과의 동맹 관계였기에 영국인 기자가 신문을 창간한 것에 일본인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베델은 우리 민족을 위한 한글판과 외국인들에게 대한 제국의 상황을 알릴 영문판을 함께 발행했다. <대한매일신보>가 일제의 만행을 비판하고 독립을 향한 애국적 기사들을 과감히 기재하자 고종도 비밀리에 베델과 대한매일 신보를 지원했다. 러시아 공사 웨베르의 처형인 손탁을 통해서 지원금을 받기도 했고 이로 인해 베델은 일본이 보기에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일본은 이토히로부미가 직접 나서서 <대한매일신보>와 베델을 묶으려고 했다. 일본의 신문사를 통해 이 신문을 견제하고 신문의 내용을 트집 잡았다.
1905년 고종의 친서를 신문에 실어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실은 글, 1906년에는 일본이 불법적으로 독도를 점령했다는 글, 1907년에는 국채보상 운동에 적극 나서는 글 등 해마다 지속적으로 일본의 만행을 비판하는 글을 이토 히로부미는 가만히 볼 수 없었다. 그러던 중 1908년 스티븐스를 저격한 전명과 장인환의 거사를 찬양한 기사에 대해 주일 영국 대사에게 강력한 항의 서한을 보냈다. 영국 고등법원은 베델에게 상하이로 가서 3주간 금고형을 받고 6개월간 근신할 것을 명했다. 그는 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으나 몸에 병을 얻어 1909년 37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나는 죽지만 <대한매일신보>는 영생케 하여 한국 동포를 구하라” 이 유언을 남기고 양화진에 잠들었다. 장지연이 지은 베델의 묘비문은 일본 관리들이 긁어내고 지워 버려 지금은 볼 수 없다. 다만 해방 후 1964년 후배 언론인들이 순 한글 비문을 그 옆에다 새로이 새워두었다. 그는 이처럼 언론인 선교사로서, 한 나라의 독립운동이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선교했던 선구자요 한국의 참 친구, 의인이었다. 오늘도 양화진 언덕에 오르면 제일 먼저 눈에 그의 묘지가 눈에 들어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