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박사】 이 땅의 병든 백성을 돌보다 양화진에 최초로 묻힌 헤론 선교사

  • 입력 2025.01.2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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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배 교수의 구약 이야기 (400) - 구약성경과 선교 이야기 (212)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이르리니”(시103:17).

이 세상의 나라가 불안하고 어렵고 힘들수록 저 하늘나라, 천국에 대한 소망이 강렬하게 되나보다.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여호와께서 공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억압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심판하시는도다”(시103:4-5). 시편 103편은 다윗의 시편으로서 메시아 약속, 다윗의 영원한 언약을 말하는 시편 89편 27-37절은 그 언약을 말하고 있다. “곧 그의 언약을 지키고 그의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시도다”(시103:18-19).

이 시편 103편은 개인 감사시편으로서 하나님의 경이로운 창조와 역사에 대해 말하며 인생에 행하신 기이한 일로 감사하며 찬양한다. 이는 개인의 체험에서 시작하여 그 감사의 동기를 말하고 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시103:2-4). 이는 시인의 죄과를 용서받은 은혜를 감사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는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시103:10-12). 다윗의 죄악을 용서받는 이야기는 시편 51:32; 시116편에서 나오며 시편 32편, 34편과 73편은 감사 시편이며 동시에 지혜시로서 교훈적 학습시의 형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 시편 84편과 104편, 125편과 더불어 시편 103편 감사 시편은 기도를 청취하는 이유와 기도의 종결에서 혼합된 문체, 어체로서 의식적 구성을 찬양으로 보여준다.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행하며 그의 말씀의 소리를 듣는 여호와의 천사들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그에게 수종들며 그의 뜻을 행하는 모든 천군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가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시103:20-22). 보호와 감사 시편은 특별한 어체 시어로 확신의 시편의 그룹으로 가장 높은 수준의 시로서 언급되며 종교와 시적 측면에서 전체 시편 수집으로서 시편 23편과 시편 73편과 103편이 이에 해당한다. “(다윗의 시)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시103:1). 이 시편은 성서적 신앙의 계보(나무) 중에 가장 아름다운 꽃 중에 하나이다. 이 시의 뿌리는 성서적 경건의 흐름의 가장 강력한 샘물 중에 하나로 깊이 흘러간다. 이 시는 수 세기에 걸쳐 가장 고귀한 시이다. 이 시편에서 인생이 풍부하게 표현된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있다.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시103:5).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가면 없어지나니 그 있던 자리도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시103:14-16). 이 시는 희년의 노래처럼 하나님 아버지 사랑을 찬양하며 은혜의 하나님의 왕국에 증인으로서 모세가 이끈 그 은총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도하심으로, ‘내 영혼이 이제 그 창조주에게 찬양하며’ 그 시편이 인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시로써 메아리쳐 반영되어 발견된다(아더 바이저).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시103:13).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시103:8).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 세계를 살아간 선교사가 있다. 헤론 선교사(Heron, John W.1856-1890)는 출신 회중 교회 출신으로서 1883년 테네시 의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그는 모교의 교수직 제안을 뒤로 하고 선교사로 부름을 받고 그는 이수정의 글을 보고 조선에 선교사로 자원한다. 이때 그의 나이는 29세, 1885년 6월 20일 제물포로 입국한다. 1885년 6월 21일, 알렌은 자신의 집에서 1호 선교사인 헤론 부부를 환영하는 만찬을 하며 한국에서 첫 공식 주일 예배를 드린다.

구리개(현재 을지로 입구 외환은행 자리) 제중원에 첫 선교사 부부로 와서, 이 병원에서 첫 복음의 선교기지로 활동한다. 헤론의 일기에 그는 선교사이면서 평신도 목회자 임을 드러낸다.

헤론 선교사와 구리개 제중원
헤론 선교사와 구리개 제중원

“아직은 공공연하게 우리의 모습을 드러낼 수 없지만, 복음이 서서히 퍼져가고 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현지어로 말할 준비가 될 때 그들은 우리가 전하는 것을 들을 준비자가 될 것입니다”(1885년 6월26일, 해론의 선교 편지 중에서). “우리 사역은 아주 빠르게 진척되고 있습니다. 제 아내(해리엇 깁슨)는 매주일 성경 공부반을 시작했습니다. 8-20명이 여성들이 모입니다. 우리 교회가 조선의 요구에 부응하기를 바랍니다. 다른 교회들도 와서 사역을 햇으면 합니다. 영적인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있고 그들 모두를 위한 처소가 있습니다”(1888년 3월 19일, 헤론 편지 중에서). 헤론의 집에서 첫 조선인 세례식을 노춘경 집에서 시행(집례 언더우드)한다. 그는 1887년 2월 7일 대한 성서공회 전신 성서번역 위원회 창립위원이 된다. 그는 1890년 6.25일 한국성교서회(현 대한기독교서회) 창설에 기여한다.

헤론은 호레이스 알렌에 이어 두 번째 제중원장이 되어 선교하였지만, 짧은 34세 선교사로서 순교하게 된다. “위대한 의사(예수)를 전해야 하는 저의 사명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이 사람들에게 그들을 위하여 죽으신 진실한 구세주를 전파하길 갈망합니다”(1885. 6.26일, 헤론의 편지). 1890년 7월 무더운 여름, 선교사 가족들이 무더위를 피해 휴가차 남한산성을 떠났지만 사랑하는 조선의 가난한 백성들을 버려둘 수 없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남아서 전염병 환자를 치료하다가 이질에 감염되었고, 7월 26일 34세의 나이로 아내와 두 딸을 남겨 놓은 채 순교하였다. 그의 무덤이 양화진에 있다.

남문 밖 시대 전에 남문 밖 정신을 온 삶으로 구현한 헤론의 선교 정신이 바로 남대문 교회 두 번째 정신이다. 헤론의 순교는 제중원이 단순히 병원이 아니라 제중원 신앙 공동체임을 다시 말해 제중원 교회 헤론 담임 목사가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을 삶으로 조선 땅에 조선 백성에게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헤론의 갑작스런 순교로 제중원은 어려움에 빠졌다. 병원과 부속의학교와 그리고 교회 역시 부분적으로 운영되었다(1893년 에비슨이 올 때까지). 헤론의 삶과 선교는 짧았지만, 그의 사랑과 선교의 흔적은 결코 짧지 않고 첫 순교 선교사로서의 족적은 우리 기억 속에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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