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이 주는 한 문장의 위로

춘천변화산기도원, 서재실
춘천변화산기도원, 서재실

목요일 오후 기도원(춘천)에 가서 서재와 주변 정리를 하고, 금요일 새벽에 교회 도착했다. 그리고 새벽 경건회를 드린 후, 아침 630분 서울신학대학교대학원총동문회 임원 연석회의를 위해 서산성결교회(김형배목사)로 달려갔다.

목회자로서 작은 원칙이 있다. 금요일은 철야 예배가 있어서 웬만하면 움직이지 않는다. 오늘은 일상의 원칙을 깨버렸다. 수석부회장이라 불참하는 것은 모든 임원들에게 누를 끼치는 일이다. 임원들은 전국에 퍼져서 목회를 하시는 분들이고, 모두 소중한 시간을 내어 자발적으로 헌신한다. 회의 참석한 후 빨리 교회로 돌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하루가 시작되었다.

서울신학대학교대학원 총동문회 증경회장,  왼쪽부터 조종환목사(오류동교회),  김현석목사(유일교회), 이명섭목사(보배교회), 김형배목사(서산교회)
서울신학대학교대학원 총동문회 증경회장,  왼쪽부터 조종환목사(오류동교회),  김현석목사(유일교회), 이명섭목사(보배교회), 김형배목사(서산교회)

회장 김형배목사(서산성결교회)의 지혜로 11시 회의는 짧고 간결하게 잘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서산성결교회의 배려로 제철인 굴을 먹기 위해 보령 바닷가로 갔다. 교회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식당인줄 알았는데, 서산에서 보령해변까지 자그마치 50km이다.  점심 먹기 위해 50km을 달려갔다. 내 평생 기억에 남을 일이다.

굴을 불에 구워 먹는 순간 온 몸이 반응했다. 고소하면서도 바다의 향기와 굴의 전형적인 맛이 입안을 감돌았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행복'이다. 무엇보다 '누구와 함께 먹느냐'가 더 중요하다. 서울신학대학교대학원에서 함께 공부했던 동문들이다. 이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같은 시간과 공간과 문화를 공유했기에 그 자리는 항상 기쁨이요 만족함이 흐른다.

황덕형목사(서울신학대학교총장)
황덕형목사(서울신학대학교총장)

황덕형 총장(서울신학대학교)도 먼 길을 달려와서 함께 자리를 했다. 총장으로서 감당해야할 몫이 얼마나 많은지, 또한 말을 다하지 못하고 속으로 삭혀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간의 고충과 마음이 전해졌다. 자리에 걸 맞는 책임을 질 때 조직은 한 발짝 성장하게 된다. 이것은 만고의 진리이다. 리더로서 제법 분위가 익어가고 있다. 산적한 학교의 현안들을 해결하면서 축적된 내공일 것이다.

늘 만남은 행복하다. 그러나 금요일 오후는 대가를 지불해야한다. 고속도로를 포함한 모든 도로가 교통지옥이 되어버렸다. 교회로 돌아와야 한다는 부담감이 밀려왔다. 네이게이션을 보니 사망이 빨간불이다. 평소 같으면 2시간이면 오는 거리를 5시간에 걸쳐서 교회 도착했다. 졸도하는 줄 알았다.

이 상태로 금요철야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 온 몸에 힘이 없다. 예배 전 1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목양실의 서재 등불을 희미하게 켜놓고 보이차를 내려 한 모금씩 입안을 축이며 소파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몸의 반응이 빨리 온다. 금방 정신과 몸이 안정감을 찾았다.

최근에 황영복 목사님이 다기와 보이차를 선물했기에 요즈음 차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평소 보이차가 주는 즐거움을 그리 많이 느끼지는 못했다. 아직은 자극성이 있는 커피에 온 몸이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차가 위로가 되었다. 차가 온 몸으로 스며드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회복이라는 선물을 주었다.

목요일에 배달된 고지인씨가 쓴 [소리로 디자인하는 사람]이 책상 위에 펼쳐져 있다. 제목이 특이해서 궁금했다. 고천일목사(새길장로교회)의 막내 딸이 쓴 책이다. 웬지 펼쳐보고 싶었다. 프롤로그를 읽는 순간 글 흐름에 흠뻑 빠져버렸다. 그리고 소제목들을 보니 구성과 아이디어가 매우 창조적이다.

예배시간은 다가오지만, 책을 손에서 놓기가 싫었다. 20여분 동안 '사운드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저자는 사운드 디자이너를 이렇게 정의했다. “폴리 아티스트이자 작곡가이며 엔지니어이자 예술가이다폴리 아티스트란, 영화나 드라마에서 생동감 나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전혀 의식도 못했던 직업군에 대해 흥미로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몸의 세포가 살아나는 기분이다. 그리고 완성도가 높은 잘 쓰여 진 책을 읽는다는 것은 큰 기쁨이며 정신적 갈증이 해소된다.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담임, 본헤럴드대표, 변화산기도원협력원장(춘천), 서울신학대학교신학박사

피곤함으로 온 몸이 지쳐있던 금요철야를 앞에 두고, 짧은 순간 차와 좋은 책으로 기쁨과 에너지를 충전했다. '주님의 돕는 방법은 참으로 다양하다.'

사람은 먹는 것으로 힘을 얻지만 근원적인 에너지는 영적 정신적 지적 문화적 공간적 요소들이 결합될 때 신선하고 창조적인 에너지를 공급받는다.

사단이 예수님을 시험했다. 돌을 떡으로 만들어라. 주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것이라”(4;4).

이 말씀이 진리이다. 마음에 다가오는 문장 하나가 주는 위로, 좋은 책이 주는 위로는 너무 크다

힘들었던 금요일, 오히려 행복한 시간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시작보다 결과가 아름다우면 과정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에 남는다. 힘든 순간이 그 순간에는 엄청난 고통이 수반되지만, 그 순간을 이겨내고 나면 나만의 소중한 추억이 되고 기쁨으로 자리 잡는다.

기억의 흔적에 늘 자리잡고 있는 것은 익숙한 포장도로를 피해 비포장도로를 즐기면서 살았던 순간들이다. 왜 사람들은 일상의 평온한 삶을 던져버리고 힘든 순례자의 길을 떠날까? 순례자의 길을 떠나는 분들은 한결같이 비포장도로를 선택한다. 그 길에서 한 줄기 빛을 얻는다. 그것이 그의 삶을 던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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