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브(AJAB) 신학과 요한 르네상스 (34)

지금까지 우리는 요한복음에 나타난 네 핵심 가치인 영광, 진리, 생명, 사랑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불트만의 요한복음 연구가 철저히 빗나갔음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거기에 더하여 불트만은 요한복음이 기본적으로 헬라적 배경 아래 있는 것으로 보았으나 요한복음은 기본적으로 히브리적(구약적, 유대적) 배경 아래 있는 복음서라는 점에서 그의 요한복음 연구는 또다시 빗나감을 면치 못했다. 궁수가 활을 쏠 때 처음 시작이 1mm가 빗나가면 100m 앞에 있는 과녁에는 크게 빗나갈 수밖에 없다. 불트만은 요한복음 11절부터 해석이 빗나갔고, 끝장인 21장까지 해석이 빗나갔기에 그의 요한복음 연구는 처음부터 끝까지 빗나갔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럼 그가 어떻게 빗나갔는지 그 사상적 배경을 먼저 살펴보자.

 

요한복음의 사상적 배경에 대해 기존에는 헬라적 배경을 우선하거나 구약적(히브리적) 배경과 헬라적 배경의 혼합으로 보려는 시도가 주류였다. 특히 다드와 그의 문하생인 바레트 및 불트만의 영향으로 요한복음의 사상적 배경으로 헬라 사상, 특히 영지주의’(Gnosticism)가 강조되기도 했다. 영지주의의 특징을 간단히 세 가지로 말하면 구원에 있어서 영적 지식에 대한 강조, 세상(물질이나 육체)에 대한 경멸적인 태도, 그리고 예수를 은밀한 지식의 계시자로 보는 입장 등이다. 20세기의 거의 모든 학자들은 요한복음을 헬라 세계에 예수를 소개하기 위한 헬라 문서로 생각했다.

요한 당시는 그레코-로만(Greco-Roman)’ 시대였다. 그러한 시대상황에서 요한복음은 헬라어로 기록되었다. 그렇다면 요한복음에 어찌 헬라적 영향이 없겠는가. 하지만 요한복음에서 헬라적 영향은 기본적으로 학자가 아니었던 요한에게 있어서는 극히 적은 영향에 지나지 않았고, 그것조차도 요한에 의해 헤브라이즘으로 변주되고 용해되어 무시해도 해석에 지장이 없을 만큼 지엽적이고 미미하다.

기존에는 요한복음이 그레코-로만시대에 헬라어로 쓰였고, 몇몇 중요한 헬라어 어휘를 사용하고 있다는 형식 논리에 매여 요한복음이 철저히 구약성경(헤브라이즘)으로 물들어 있다는 사실을 보지 못했다. 그동안 요한복음을 헬라적 배경과 히브리적 배경의 혼합물로 취급함으로써 요한복음 이해를 혼란스럽게 했고 빗나가게 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리고 그 혼란의 중심에는 요한복음서 연구에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불트만이 자리하고 있다.

반유대주의(anti-Semitism)’가 절정에 달했던 나치 시대에 불트만은 유대인의 성서인 구약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그는 구약의 역사를 유산(abortion)의 역사실패(failure)의 역사로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구약성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유대인에게는 하나님의 계시이나 기독교인에게는 더 이상의 계시가 아니다. 따라서 구약은 신약의 전제(presupposition)일 뿐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와 같이 불트만은 구약과 신약의 완전한 신학적 불연속성(discontinuity)을 주장하였다. 그의 생각은 요한복음의 사상적 배경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그리하여 그는 요한복음의 종교적(사상적) 배경으로 헬라 사상(Hellenism), 특히 영지주의(靈知主義)를 강조하였다.

신약성경의 기자들은 거의 다 유대인이었다. 이 말은 그들이 외피에 있어서는 헬라 문화(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들의 속알(정신세계)히브리 신앙과 생활’(헤브라이즘)에 토대를 두고 있음을 시사한다. 요한이 얼마나 유대적(히브리적)인가 하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히브리 어휘인 메시아의 사용이다. 이 어휘는 신약 저자 중 유일하게 요한만이 2(1:41, 4:25) 사용하고 있다. 유대인 요한이 쓴 요한복음은 기본적으로 구약적(유대적) 배경으로 물들어 있는 책이다. 따라서 헬라적 사상 배경은 외피에 지나지 않고, 본질은 구약적(유대적) 사상 배경 아래 있음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2. 불트만의 요한복음연구(1941)가 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은 1947, 사해 동편 쿰란 동굴에서 사해사본이 발견되었다. 이 발견은 쿰란문서와 요한복음 사이의 사상적, 언어적 유사성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양 문서 간의 비교를 통해 요한복음이 그 동안 주장되어 왔던 헬라적 배경들보다 유대적(구약적) 배경에 속한 것으로 드러났다. 쿰란문서의 발견은 신구약 중간시대의 유대교에 대하여 보다 자세한 사실을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또한 초기 기독교가 유대적 배경에 깊이 뿌리를 두고 태동했다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특히 쿰란 제1동굴에서 발견된 공동체 규범(Community Rule)은 예수 시대에 쿰란문서과 요한복음 간의 평행을 잘 보여준다. 4복음서와 쿰란 공동체 규범간의 비교를 영문 그대로 옮기면 이러하다.

그 외에도 세상에 대한 저항 사상, 형제애 개념, ‘일치로서의 공동체의 자의식, 성령 개념 등에 이르기까지 쿰란문서와 요한복음 사이에 많은 사상적, 언어적 유사성이 발견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요한복음과 사해문서 간의 많은 유사성은 어디서 유래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우리는 예수께서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사실(3:13-17; 1:9-11; 3:21-22)을 통해 둘 사이에 어떤 유대 관계가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고대근동학의 권위자인 조철수 교수는 그의 필생의 대작 예수 평전(김영사, 2010)에서 세례요한이 쿰란공동체의 뿌리인 엣세네파와 직간접적으로 관계된 인물이라는 점을 밝혔다.

요한복음 1:35 이하에 보면 세례요한의 두 제자 가운데 하나는 안드레이고, 또 다른 제자는 요한복음의 저자(애제자)인 사도 요한임을 앞서 언급하였다. 세례요한의 추종자인 사도 요한은 엣세네파와 깊은 연관이 있고, 그 후 그는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는 점에서 양서 간에는 깊은 유사성을 띤다. 사해문서를 남긴 쿰란공동체는 종말론적 현실도피 집단으로서 자신들을 빛의 자녀로 여기며 메시아가 오기를 대망한 유대 묵시문학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요한복음은 쿰란공동체가 담지한 유대 묵시문학적 경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요한복음이 헬라적 배경 아래 있다는 불트만의 주장은 빗나간 주장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편, 1945년 애굽 나일강 상류(룩소르 근방) ‘나그 함마디에서 고문서가 발견되었다. 13개의 코덱스(Codex, 가죽포장 파피루스 문헌)에 포함된 책은 52종이나 된다. 그 가운데 <도마복음서>가 들어 있었다. ‘사해문서가 주로 구약과 관련된 문서라면, ‘나그 함마디 문서는 신약과 관련된 문서다. 도마복음서는 극단적인 영지주의 작품은 아니지만 상당히 영지주의적 요소를 많이 간직하고 있는 문서이다.

Nag Hammadi 문서
Nag Hammadi 문서

요한복음도 도마복음서처럼 앎(지식)에 대한 강조, 빛과 어둠 및 위와 아래, 영과 육, 진리와 거짓 등 이원론적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영지주의 문서인 도마복음서와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요한복음의 헬라적 영향에 깊은 관심을 가진 학자들이 많았다. 여기서 먼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헬라적 이원론(영지주의)과 히브리적 이원론(묵시문학)은 다르다는 사실이다. 전자는 공간적(존재론적) 이원론인데 반해, 후자는 시간적(역사적) 이원론이라는 사실이다.

요한복음은 공간적 차원에서 예수께서 하늘에서 땅으로 성육신하심으로 위와 아래의 통일은 물론 육체를 악으로 보는 헬라적 영지주의 사상을 극복(초월)하고 있다. 또한 시간적 차원에서 하나님 나라를 안고 오신 예수로 인해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었고, 앞으로 올 빛의 시대가 예수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보여준다. 즉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헬라적 영지주의나 유대적 묵시사상을 극복(초월)했음을 보여준다.

 

3. 한편, ‘명사형 언어인 헬라어동사형 언어인 히브리어의 사용법을 보면 요한복음이 얼마나 히브리적 복음서인가를 알 수 있다. 요한은 믿는 것아는 것을 동의어로 쓸 만큼 이 단어를 즐겨 사용한다. 그런데 요한은 이 두 단어를 철저히 동사형으로 쓰고, 명사형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명사 믿음’(πίστις, 8, 5, 11, 요 없음, 바울서신 141), 동사 믿다’(πιστεύω, 11, 14, 9, 98, 바울서신 54). 또한 명사 지식’(γνώσις, 마태와 마가 없음, 2, 요 없음, 바울서신 23), 동사 알다’(γινώσκω, 20, 12, 28, 57, 바울서신 50).

그런데 요한이 사용한 알다동사는 헬라적 의미에서의 머리로 아는 것, 또는 지적으로 아는 것을 의미하기보다는 히브리어 야다(ע), 즉 지적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체험과 경험을 통해 아는 것, 또는 관계와 교제를 통해 아는 것을 말한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17:3)에서 아는 것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통해 사귐을 나누는 그러한 삶이 바로 영생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구절을 소위 요한의 영지주의’(Johannine Gnosticism)’라고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끝으로, 요한복음 1:1에 나오는 말씀’(λογος)에 대해 살펴보자. ‘로고스어휘가 헬라 철학에서 널리 사용된 어휘라고 하여 요한복음의 주된 사상적 배경을 헬레니즘에서 찾으려고 했던 학자들이 많았다. 불트만을 비롯한 여러 학자들은 로고스 개념의 배경을 헬라적 영지주의(또는 스토아 학파)에서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스토아 학파는 플라톤의 이원론’(영혼과 육체) 사상을 극복하고 모든 것은 하나의 힘에 의하여 움직인다고 보았는데, 그것이 로고스이다. 로고스는 우주의 모든 현상을 조절하고 주관하는 절대정신이며 주관자이다.

그러나 요한이 사용한 로고스어휘는 헬라 철학에서 널리 사용된 개념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즉 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있을지라도 그 의미는 전혀 다르다. ‘상징의 천재은폐의 대가인 요한은 또한 변주의 달인이다. 그는 헬라적 개념인 로고스(1:1)를 히브리적 개념(1:14)으로 변주시켰다. 요한복음의 로고스(1) 인격을 갖고 있으며, (2) 영원 전부터 계셨으며, 특히 (3) 사람이 되었다는 점에서 우주를 다스리는 신()의 이성(理性), 또는 만물의 이성적 원리로 쓰인 헬라 철학의 로고스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요한은 로고스어휘가 지닌 다양한 의미를 신학화시켜 새로운 기독론적 로고스로 창조해 내었다. 추상적(관념적), 신비적인 로고스의 요소를 벗기고 구체적인 역사적 인물 예수를 로고스라고 선언하였다. 이는 로고스어휘를 사용한 어느 사상에서도 감히 시도한 적이 없는 혁명적 발상이다.

무엇보다도 로고스개념은 구약성경적 관점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요한은 헬라어 구약성서(칠십인역)을 사용하였다. 그는 요한복음 1:1태초에말씀’(로고스)은 칠십인역(LXX) 창세기 1:1(ἘΝ ρχῇ)과 신명기 1:1에서 따왔다(신명기의 모세의 말씀들’(복수, ολόγοι)이 요한복음에서는 독생자 예수를 가리키는 의미에서 단수로 변형). 그러니까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는 모세오경의 첫 책 창세기의 첫 단어와 마지막 책 신명기의 첫 단어가 합쳐져 모세오경(토라), 구약을 말하는데,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구약의 말씀을 성취하러 오신 분이라는 선언이다.

요한은 1:117개의 헬라어 단어로 구성하여 이를 암시하고 있다. 1:1에 나오는 하나님’(ὁ θεός) 어휘에서 관사(ὁ) 하나를 생략하여 숫자 17에 맞추었다(상응하는 21:117개 단어). 여기서 숫자 17’십자가 숫자이다. 이를 통해 요한은 말씀으로 오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말씀(구약성경, 토라)을 다 이루었다”(19:30)는 것을 말하고 있다. 불트만을 비롯한 요한복음 연구자들은 왜 관사가 생략되었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특히 요한복음이 철저히 히브리적(구약적) 배경 아래 있다는 보다 구체적인 사실을 우리는 표적 상징코드말씀 상징코드’(‘에고 에이미말씀)를 통해 명확하게 엿볼 수 있다(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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