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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인 예배신학적으로 예배를 정립했다면, 우리 예배의 모범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교파의 헌장이나 헌법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 어차피 헌장이나, 헌법, 교리 등은 모두 성경을 기초로 사람들이 만든 것이다. 교파별로 예배가 상이하고, 다른 주장을 한다 해도 가장 기본은 성경이다. 가장 성경적이며, 복음주의적인 예배는 어떤 것인가?첫째, 하나님이 예배하도록 우리를 부르신 것이다. 우리가 예배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고, 구원하셨으며,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
최종인 칼럼
최종인 목사
2021.03.19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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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열풍, 주식열풍은 양날의 칼처럼 우리 사회의 역동성과 어둠을 보여준다. 민족적 기질이 어느 정도 작용한듯하다. 우리 정서에 ‘모’ 아니면 ‘도’라는 사고가 깊이 깔려 있는 것도 열풍을 부채질하는데 한몫하는 것 같다.부채도 능력이라는 말이 이제는 보편화된 생각인 듯, 무리한 대출로 열풍에 가담하는 현상은 기어코 ‘영끌’이라는 기가 막힌 신조어를 만들어냈다.최근에, 우연히 성동구와 광진구에 나온 종교 관련 매물을 살펴보게 되었다. 대법원 경매 사이트에 중대형 교회 9개가 올라와 있었다. 나는 눈을 비비며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수
발행인칼럼
최원영 발행인
2021.03.16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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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의 지팡이 대신 목자의 지팡이를 잡은 모세레위 지파의 아므람과 요게벳 사이에서 태어난 모세는 아론의 아우요 미리암의 동생이었다. 히브리 민족의 인구 팽창에 위협을 느낀 애굽이 대대적인 종족 말살 정책을 최우선 정책으로 펼치자 그 여파로 모세는 단 석 달 동안 친부모 품에서 양육되다 갈대상자 속에 넣어져 나일강에 버려졌다. 바로의 딸 공주에게 발견되어 느보산 근처에서 죽기까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강권적으로 이끄셨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구원자였지만 하나님을 만나보기 전까지는 자신조차 구원할 수 없는 무능자에 불과
한명철 칼럼
본헤럴드
2021.03.16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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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단절된 예배그런데 그동안 한국교회의 예배는 세상과 단절된 예배였다. 주지하다시피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배를 통해 세상으로 나가 살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다. 즉 예배하는 자리는 하나님과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 간의 만남이요, 그것은 다시 세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동안 한국 교회는 예배를 지나치게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간의 교제에만 초점을 맞춘 ‘교회 안의 의식’으로 제한시켜버리고,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와 세상의 교제에 대해서는 무관심해 왔던
최종인 칼럼
본헤럴드
2021.03.12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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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에 [주기도문], 부제로 “주님의 마음이 담긴 소중한 기도 원리”란 제목으로 출판한 적이 있다.기도는 현실과 비전 사이에 놓여 있는 장벽앞에서 내 힘의 한계를 인식하고, 무릎끓고 나의 하나님을 바라보는 낮아짐의 시간이다.짧은 인생을 뒤돌아보면, 긴긴밤 지새우며 허우적거리는 갈등의 시간들이 참 많았다. 무엇보다 2000년 맨 땅에 믿음으로 개척한 후 오랜 시간 고민과 갈등의 시간들이 많았다. 무엇보다, 힘겨운 삶의 자리로 인해서 찾아오는 문제들에 대해, 삶의 정답을 몰라 좌충우돌하며 힘겹게 살았다. 어디로 가는 길이 정답일까
발행인칼럼
최원영 발행인
2021.03.09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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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잊혔으나 하나님께 기억된 자 세례요한세례요한은 제사장 사가랴와 주님의 모친 마리아의 친족인 엘리사벳의 아들이었다. “하나님의 기억”(사가랴)과 “하나님의 서약”(엘리사벳) 사이에서 “사랑받는 자” 세례요한이 태어났다. 계명에 비추어 무흠(無欠)했던 노부부는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었고 그들의 경건한 씨앗인 세례요한도 하나님의 공의에 출중했다. 특이한 출생 이력 때문에 세례요한은 아이 적부터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절망의 오랜 세월을 버텨온 백성들은 그의 장래를 희망 속에 기대하며 삶을 이어갔다. 존경받던 제사장의 아들로서 세
한명철 칼럼
한명철 목사
2021.03.09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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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바울과 베드로전도자의 사역을 위해서는 재정이 필요하다. 바울은 자급자족할 수 있는 기술과 장사하는 법을 익힌 상태였다. 삶의 불확실성에 붙잡혀 웅크려 있지 않았다. 자립과 생존에 필요한 해결책을 찾았다. 1차 전도 여행에서는 회당을 중심으로 유대인에게 먼저 복음을 전도했고, 고린도 사역에서 기술(군용 천막 제작)을 활용했는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함께 동역했다.수요가 많은 천막을 만들었다(행 18:3). 천막이 낡으면 몇 해마다 교체해야 하므로 천막 수요는 계속 있었다.
형람서원
고경태 논설위원
2021.03.08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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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논리학(論理學)”이라고 하는데, 영미권에서는 “Logic, 논리(論理)”라고 한다. 20세기 논리학의 기술 1, 2를 집필한 윌리엄 닐(William Kneale, 1906-1990)은 고대에서 근대까지 철학자들이 가진 논리 구조를 정리했다. 논리학은 언어, 철학, 신학(종교), 법학 등 모든 문리(文理) 분야에서 흐르는 피와 같다. 논리가 없으면 문리는 없다. 역사학도 과거 사건에 대한 정리가 아니라, 과거 사건을 해석하기 위해서 논리의 힘이 필요하다. 논리는 해석 과정과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설계도이다.인간은 이성적인
형람서원
고경태 논설위원
2021.03.06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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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주는 충격이 엄청나다. 물론 대상들 마다 다르겠지만, 코로나 때문에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바로 예배일 것이다. 작은 교회들은 물론이고 큰 교회들도 영상예배에 대해 이해가 많지 않은 가운데 갑자기 영상예배로 전환하면서 많은 혼란과 시행착오를 거쳤다. 봄 심방을 취소하거나, 전화로 심방을 대신하기도 하고, 교회학교의 경우는 더욱 혼란스러웠다. 온라인을 통한 교사들 미팅이나 교육, 영상자료 제공으로 주일예배를 대신했지만, 성도들의 만족도는 그리 높지 않다. 문제는 이 같은 상황이 금방 종료될 것이 아니라 길어진다는데 있
최종인 칼럼
최종인 목사
2021.03.05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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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제자의 손목 시계가 눈에 띄어 성철 스님이 어찌된 일인지 물었다. 머뭇거리던 제자가 어는 신도로부터 선물 받은 것이라 실토하자, 성철 스님이 불같이 화를 내며 그 시계를 바위 위에 놓고 큰 돌로 내리쳐 산산 조각을 내버렸다고 한다. 성철 스님은 평상시 제자들에게 신도들로부터는 어떤 선물도 받지 말 것을 엄히 명하였기 때문이다.새 밀레니엄을 맞이하기 얼마 전부터 21세기는 “영성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예견한바 있다. 20세기가 이루어 놓는 물질만능주의 반작용으로, 또 경계가 허물어지는 퓨전(fusion) 시대를
주욱중 시선
최원영 발행인
2021.03.04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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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는 주님의 종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종인 목사에게 욕하거나 저주하면 종의 주인이 욕하거나 저주하는 사람에게 벌을 줄 것입니다.요즘은 이런 설교가 많이 들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틀릴까요? 저는 틀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그런데 약간의 문제가 있습니다. 목사를 욕하거나 저주하는 일을 누가 가장 많이 할까요? 그 일은 목사와 목사부인이 가장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목사는 눈 앞에 목사가 있고, 목사의 상대는 목사입니다. 목사의 아내 앞에는 목사가 항상 있습니다. 목사와 목사 부인은 목사를 대항해야 하고 이겨
형람서원
고경태 논설위원
2021.03.04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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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당신의 종들을 만나는 광야광야는 하나님이 자기의 종들과 만나는 곳이다. 하나님은 번성의 도시 갈대아우르에서 아브라함을 거친 광야로 이끌어내셨고 이삭과 야곱을 광야에서 다양하게 훈련시키셨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실로 광야의 하나님이셨다. 광야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만나 친구처럼 대면하여 말씀을 나누셨다. 광야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세심하게 다루셨다. 광야 길을 걸으면서 세례요한은 말씀의 검을 예리하게 갈아 날을 세웠다. 회개를 외치고 독사의 자식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불같이 토해냈다.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
한명철 칼럼
한명철 목사
2021.03.02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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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새판 짜기: 날마다 주님과 함께 시작"내 인생의 새판을 짜기 위한 위대한 발걸음의 첫 출발을 날마다 주님과 함께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영으로 충만하면 현실을 이기고 삶을 기름지게 하는 영적 에너지가 나옵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능력과 업무를 지혜롭게 감당하는 탁월함도 주어집니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지침과 피곤함과 엉클어짐도 이겨낼 뿐 아니라 오히려 능동적으로 믿음으로 극복하는 에너지를 얻습니다."오직 예수님께 모든 시선을"많은 분들이 교회의 문제를 지적하며 진단을 내립니다. 그리고 대안을 제시합니다.
발행인칼럼
최원영 발행인
2021.02.25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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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암의 심장 같은 현장에 임한 말씀일어서기 위해 엎드려야 하듯 메신저는 엎드리기 위하여 들로 나가야 한다. 때로는 일상의 익숙함이 메신저의 엎드림을 방해한다. 그 자리에 있으면 꼭 돌봐야 할 일이 있고 챙겨야 할 업무나 해결해야 할 과제가 끊임없이 달려든다. 소중한 것을 잃고서야 번쩍 정신이 들어 엎드릴 장소를 물색하는 우리이지만 늦게라도 엎드림이 엎드릴 줄 모르고 일상의 평온에 거함보다야 훨씬 낫다. 에스겔은 거친 들로 나아갔다. 익숙한 삶의 둥지를 떠나 익숙하지 않은 삶의 저편으로 건너갔다. 세상에 등을 돌리고 고적한 광야로 들
한명철 칼럼
한명철 목사
2021.02.23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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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영혼의 울림이다. 음악은 코로나19로 인해 힘겹게 버티고 있던 우리 사회를 통합하는 에너지를 던져 주었다. 특히 음악의 많은 장르 중에서 한국인의 정서를 담고 있는 트롯이 국민들의 마음을 만져주는 광풍의 역할을 했다. 아직도 그 열기가 현재 진행형이다. 교회 예배의 절대적인 요소가 음악이다. 음악을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내면의 깊은 아픔과 말 못할 고민을 가사에 실어 고백한다. 그래서 찬양은 곡조가 있는 기도이다. 깊은 영혼의 울림이 있는 찬양을 듣고 있노라면 영혼에 새 힘이 넘쳐난다. 음악은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
발행인칼럼
최원영 발행인
2021.02.23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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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의 회복주일예배는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주일예배의 회복을 위해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가?첫째, 앞으로는 설교 중심의 예배에서 탈피해야 된다고 본다. 개신교 예배에서의 설교가 차지하는 위치를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지나친 설교 중심의 예배는 “설교가 바로 예배이다”라는 그릇된 예배관을 심어 줄 수 있다. 예배에 대해 단순한 이해 구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설교를 통해서만 예배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설교를 통해서 은혜를 체험하면 예배를 통해서 은혜를 경험하였다고 생각하지만,
최종인 칼럼
최종인 목사
2021.02.19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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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아들아 아빠가 왜 너를 사랑할까?아들: 아빠 아들이니까...막둥이 아들이 워낙 예쁜 척을 하고 어리광을 부리길래, 학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물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뜻 밖에 아들이니까... 라고 대답을 해서..아버지: 야... 예뻐서 사랑한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아들: 아들이니까 좋아하지...아버지: 너가 정말 3학년이구나... 유치원이었으면 예쁘니까.. 라고 대답했을 것인데...라고 했더니 신났는지 또 질문하라고 재촉했다.아버지: 야 그러면 넌 예쁘냐?아들: 그럼 예쁘지. 아빠보다 더 예뻐...아버지:
형람서원
고경태 논설위원
2021.02.19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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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기는 다양한 언론매체를 손안에서 볼 수 있기에 타인의 말에 현혹되기 싶다. 우리는 매일 누군가로부터 듣는다. 그 누군가 중에 가장 가까운 친구가 스마트 폰일것이다. 스마트 폰은 이미 우리와 한 몸이 되었고, 일상의 필수품이 되었다. 스마트 폰의 영향력 아래에 놓여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어쩌면 모든 정보의 기준이 스마트 폰에서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떤 글을 보고 어떤 영상을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견해를 가지게 된다.이런 시대에 살면서 타인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힘이 어디서 나올까? 내 안에
발행인칼럼
최원영 발행인
2021.02.18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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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몇 달 동안 작은 절에서 공부한 때가 있었다. 늦게까지 책 읽다가 잠들면 새벽 4시도 전에 기거하던 요사채 앞에 어김없이 목탁이 울려 잠을 깰 수 밖에 없었다. 이른바 도량제(道場祭). 도량제는 새벽 예불 전에 절 마당의 부정한 기운을 내몰기 위해 절 주변을 한 바퀴 돌며 염불을 하는 일인 것이다.교회는 기독교의 도량(道場)이다. 길(道)이요 진리되신 예수그리스도가 머리되신 자리(場)가 교회이기 때문이다. 교회란 도량도 끊임없이 부정한 기운의 위협에 노출될 수 밖에 없는데, 이른바 사이비와 이단의 위협과 유혹이 그것이다.젊은
주욱중 시선
주욱중 논설위원
2021.02.17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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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불길을 헤쳐 나온 모세메신저가 본받아야 할 기도의 모본자 “모세.” 사내로 태어나면 강물에 내다버려야 하는 살벌한 시기에 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갓난애의 준수함이 부모에게 담대함을 주었고 숨어서 석 달을 키웠다. 아들을 석 달 간이나 양육할 수 있었던 것은 부모의 사랑과 믿음이었다. 더 이상 숨겨 키울 자신이 없었던 부모는 애굽 법령에 따라 아기를 나일 강 하수에 내버렸다. 목욕하러 나왔던 바로의 딸이 갈대 사이로 떠내려가던 상자를 보았다. 이렇게 나일 강에서 “건짐 받은” 모세가 후일 이스라엘을 바로의 학정에서 건져냈다.
한명철 칼럼
한명철 목사
2021.02.16 09:04